조수익(趙壽益)
이어 경직(京職)으로 복귀하여 대사간·부제학·대사성 등을 지낸 뒤 1651년(효종 2)에는 이조참의로서 『인조실록(仁祖實錄)』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다시 대사간이 되었으며, 이어 대사성·대사헌·이조참판·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660년(현종 1) 호조참판을 지내고 이듬해 다시 대사헌이 되었다. 이 때 예론(禮論)이 일어나 남인과 서인의 대립이 본격화하자 남인인 권시(權諰)와 조경(趙絅)을 비호하는 소를 여러 차례 올렸다. 1663년 병조참판으로 전임되었으나, 남인의 실세(失勢)를 보고 스스로 사직하였다. 이듬해 다시 한성부우윤으로 재기용되었고, 형조·예조참판, 한성부좌윤을 역임한 뒤 1674년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