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섭(金亨燮)
1900년 7월 한국군 보병 참위(參尉)로 임관했으나, 아관파천(俄館播遷) 이후의 배일감정으로 귀국이 허락되지 않아 반망명생활을 했다, 이때 유길준(兪吉濬)과 연계, '친러정권 타도, 자주정부 수립'을 목표한 혁명일심회(革命一心會)에 참여했다. 1901년 초 귀국한 뒤 대한제국 무관학교 보병과 교관이 되었으나, 이듬해 혁명일심회 사건으로 체포되어 사형판결을 받았으나, 1904년 감형되어 전라남도 지도(智島)에 유배되었다. 1905년 10월 사면을 받고 육군 참위로 복직한 후, 무관학교 학도대 중대장, 시위(侍衛) 보병 제2대대 교관을 거쳐 1906년 6월 육군 보병 부위(副尉), 7월 육군 공병 정위(正尉)로 진급했다. 이후 무관학교 중대장 등을 거쳐 1907년 군부(軍部) 군무국 병기과에서 근무했다. 일제강점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