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그림 윗부분에 기록된 제기(題記)에 의하면 이 초상화는 고려시대 당시의 공신상은 아니고, 1788년 박춘빈이라는 화사(畵師)에 의하여 이모(移模)된 것으로서, 이 상의 범본(範本)으로 삼았던 본은 당시 우방사(牛芳寺)에 있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진주목을 살펴보면 원래 강민첨의 유상(遺像)은 진주 우산에 있는 모방사(茅房寺)에 있다가 이 상이 이모되기 전 어느 시기엔가 우방사로 옮겨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화상의 형식은 복두(幞頭)에 정장(正裝)을 하고 홀(笏)을 들고 앉은 우안팔분면(右顔八分面)의 반신상으로서 고려시대 공신상 형식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의자에는 호피가 깔려 있는데, 이것은 이모 당시인 18세기 후반의 상용형식을 빌려온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고려시대에 살았던 인물의 초상화가 희귀한 실정에서 이모본을 통해서나마 그 전체적인 표현형식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