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가야(古寧加耶)라는 이름은『삼국유사(三國遺事)』5가야조(五加耶條)와『삼국사기(三國史記)』지리지(地理志) 상주(尙州) 고령군조(古寧郡條)에 보이고 있다.『삼국유사』5가야조에는 고려시대의 함녕(咸寧)이라고 하였다. 함녕은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 대체로 지금의 함창(咸昌)을 중심으로 한 가야이다.
한편, 고령가야를 지금의 진주(晉州) 지방에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 그 근거로 진주의 옛이름 거열(居列)이 고령과 음이 비슷하다는 것을 들고 있으나, 언어학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변한(弁韓) 12국을 이은 가야의 강역의 넓이로 보아 지금의 함창을 중심한 지역에 성립된 가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다만 이곳이 5가야의 하나로 지목되는 것은 신라 말 고려 초의 관념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위치 상으로도 가야연맹 지역과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8세기 중엽 경덕왕대 이후의 지명인 ‘고령’이 가야국과 붙어서 국명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지역이 신라에 복속되기 전에 있었던 하나의 독립소국에 후대에 ‘고령가야’라는 국명이 붙여진 것으로 생각된다.
같은『삼국유사』5가야조에 인용된『본조사략(本朝史略)』은 고령가야를 가리현(加利縣)이라고 주(註)를 달았다.『삼국사기』지리지에 따르면 성산군(星山郡)을 고려시대의 가리현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성산군은 벽진가야(碧珍加耶)의 땅이었으므로 가리현을 고령가야에 비정한 것은 분명히『본조사략』저자의 잘못일 것이다. 기타 사항에 대해서는 자료가 없어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