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고창 출신. 1906년 최익현(崔益鉉)의 태인의거(泰仁義擧) 때 참모로서 최제학(崔濟學) · 최학령(崔學領) · 이용길(李容吉) 등의 의사들과 함께 각 지방을 돌아다니며 군사를 모집하고 무기를 준비하는 데 활약하였다.
그 해 6월 5일 정읍을 거쳐 순창으로 진출하였으나, 6월 11일 전주와 남원에서 출동한 진위대 및 일본군에 포위되어 끝까지 버티다가 결국 이튿날 최익현 · 임병찬(林炳瓚) 등 13명과 함께 붙잡혀 전주 진위영(鎭衛營)으로 호송되었다.
6월 18일 서울로 압송되어 일본군사령부에서 가혹한 심문을 받고 4개월간의 구류형을 선고받았다. 1910년 임병찬이 밀조(密詔)를 받고 다시 의병을 일으켰을 때도 참모관으로서 활약하였다.
또한, 1914년 2월 독립의군부의 참모총장의 칙령을 받았다. 1919년 전국 유림대표 137명 중의 한 사람으로 파리장서(巴里長書)에 서명하였다.
1968년 대통령 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