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흥(高興).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고창 출신. 고석진(高石鎭)의 문인이다.
1907년 의병장이 되어 김영백(金永伯) · 이화일(李花一) 등과 의병 200명을 이끌고 장성군을 행군하면서 창의포고문(倡義布告文)을 각 지역에 살포하고 정읍에서 일본헌병과 교전, 크게 격파하였다.
1908년 흥덕(興德) · 소노령(小蘆嶺) 등지에서 일본군 병참소를 공격하여 장총 3정, 군도 5정, 탄환 등을 노획하였다. 1909년 동지들과 정읍군 소성면에서 일본군을 공격할 작전을 모의 중 일본헌병에게 붙잡혀 북이면의 헌병분견소에서 총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