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쪽은 정읍시, 동남쪽은 노령산맥을 경계로 전라남도 장성군, 남쪽은 전라남도 영광군, 서쪽은 황해, 북쪽은 줄포만을 사이에 두고 부안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6°26′∼126°46′, 북위 35°17′∼35°34′에 위치한다. 면적은 607.72㎢이고, 인구는 6만 46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3개 면, 563개 행정리(189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교촌리에 있다.ㄹ
노령산맥이 내장산에서 이어지면서 동쪽의 군계가 남서방향으로 뻗어내려 도내 서부지역에서 부안군과 함께 산지성 지역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동남쪽과 북쪽의 아산면 일대가 높은 편이며 중앙은 낮은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구릉지가 넓고 충적지가 좁은 게 특징이다.
동남부의 노령산맥 줄기에는 방문산(方文山, 640m) · 방장산(方丈山, 734m) · 문수산(文殊山, 621m) · 고산(高山, 527m) 등의 높은 산들이 솟아 있다. 이들 산지의 기반암은 편마상화강암이다. 북서부의 선운산지(禪雲山地)가 있는 아산면 · 심원면 · 부안면 일대는 줄포만을 사이에 두고 인접한 변산반도와 같은 백악기 말의 신기화산분출암을 기반암으로 한다.
선운산지에는 경수산(鏡水山, 444m) · 소요산(消遙山, 444m) 등 300∼400m의 산들이 솟아 있다. 그 밖에 상하면과 무장면 경계에 있는 송림산(松林山, 295m) 부근에 100∼200m의 낮은 산지가 있다. 이들 산지를 제외한 군의 중앙부는 100m 내외의 낮은 구릉으로 되어 있으며, 기반암은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이들 구릉지는 1970년대 중반부터 적극적으로 경지로 개간되어 전라북도에서 밭이 많은 군이 되었다.
하천은 대체로 짧고 수량도 많지 않으며, 충적평야는 이들 하천 유역에 좁게 형성되어 있다. 주요 하천으로는 노령산맥 서사면에서 발원해 고창읍을 관통한 후 선운산지의 중앙을 지나 줄포만으로 흘러드는 인천강(仁川江)이 있다. 인천강에는 고수천(古水川)이 문수산에서 발원해 고수면을 관통한 뒤 아산면에 흘러든다.
그 밖에 주진천(舟津川)은 경수산과 소요산에서 발원해 선운사 옆을 지나 줄포만으로 흐른다. 이들 하천 유역은 대개 구릉지대로서 관개가 용이해 논으로 이용되고 있다. 줄포만에는 넓은 갯벌이 전개되며, 서부해안에는 사주(沙洲)가 형성되어 해수욕장으로 개발되어 있다.
서해안에는 2개의 유인도와 3개의 무인도 등 5개의 섬이 있다.
기후는 남부서안형 기후구에 속하며, 연평균기온 13℃, 1월 평균기온 -1.0℃, 8월 평균기온 25℃, 연강수량은 1,200㎜ 내외이다. 겨울철에 눈이 많고, 동부의 노령산맥 서사면은 지형성 강우가 많다.
구석기시대의 유물 · 유적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 유적이 하천이나 해안의 연안에서 발견된 점과 부근의 군산조개더미에서 신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된 점으로 보아, 이 곳에서도 이 시대의 유적이 발굴될 가능성은 많다고 생각된다.
특히 이웃 부안의 동진석 일대의 취락지에서 민무늬토기 파편과 함께 돌검 · 돌도끼 · 돌화살촉 등이 발견되었으므로 초기의 농경문화가 이 지방에도 유입되었을 것이다. 이는 고인돌이 부안을 비롯해 이 지방에 밀집되어 있고, 점차 동진강 · 만경강 유역을 거쳐 내륙지방에 산재해 있음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삼한시대 고창은 마한의 영토로 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에 속했으며,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모량부리현(牟良夫里縣) · 송미지현(松彌知縣) · 상로현(上老縣) · 상칠현(上漆縣)에 속하였다.
그 뒤 757년(경덕왕 16) 모량부리현은 고창현으로, 송미지현은 무송현(茂松縣)으로, 상로현은 장사현(長沙縣)으로, 상칠현은 상질현(尙質縣)으로 개칭되었으며, 보리고을을 상징하는 모량부리의 속명인 모양(牟陽)이 이곳의 지명으로 함께 사용되어 왔다. 뒤에 고창 · 무송 · 장사 3현은 무령현(武靈縣)의 영현(領縣)이 되었고, 상질현은 고부군의 속현이 되었다.
고창현은 고려 초기에 고부군에 속했다가 상질감무(尙質監務)가 겸했고, 장사현은 영광군에 속했으며, 무송현도 초기에는 영광군에 속했다가 장사감무가 겸임하였다. 또한 상질현은 고부군에 속했다가 장덕(章德 또는 昌德)으로 고쳐 감무를 두고, 고창을 겸무하게 하였다.
특히 고창지방은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고려시대부터 전라남도지방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는데, 이는 당시의 장사현과 무송현이 나주목 영광군에 속해 있는 것으로도 입증된다. 1308년 충선왕이 즉위하자 왕명을 피해 장덕을 흥덕으로 개칭하였다.
1401년(태종 1) 고창현에 감무를 두었으며, 1455년(세조 1) 지방방위조직의 개편에 따라 나주진관(羅州鎭管)의 속읍이 되면서 현감을 파견했고, 속오군(束伍軍)은 입암산성에 속하였다.
무송현과 장사현은 1417년 무장현(茂長縣)으로 통합되면서 진(鎭)을 두어 병마사가 겸무했으며, 1423년(세종 5) 첨절제사로 바꾸었다가 1482년(성종 13) 현감으로 고쳤고, 1836년(헌종 2) 군으로 승격되었다. 흥덕현은 1455년 전주진관의 속읍이 되었고 감무를 현감으로 고쳤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나타난 고창현의 호수는 164호, 인구는 974인, 무장현은 호수 356호, 인구 2,033인, 흥덕현은 호수 216호, 인구 1,051인이었다. 특히 고창지방에는 조선시대에 해군의 군사적 요충지로 중시되면서 많은 성과 봉수대가 축조되었다.
또한 1420년 무장향교가, 1512년(중종 7) 고창향교가, 1621년(광해군 13) 흥덕향교가 창건되어 이 지방의 유교문화를 보급시키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고창지방에서도 이에 호응해 무장읍 밖 고산봉(孤山峯)에 진을 치고 봉기의 대의를 밝히는 포고문을 발표하였다.
1895년 지방제도의 개편에 따라 고창현은 군으로 승격되어 전라북도에 편입되었으며, 무장군은 전주부에 소속되었다가 이듬해 전라남도에 편입되었고, 1906년 다시 전라북도에 편입되었다.
흥덕현은 군으로 승격되었다가 1906년 부외 · 부내 두 면을 병합해 부안군(富安郡)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3개의 군이 하나로 합쳐져 고창군이라 칭해졌으며, 193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14개 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1955년 7월 1일 고창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73년 7월 1일에 신림면 제하리가 흥덕면에 편입되었으며, 1983년 2월 15일에 성송면 산수리 일부가 대산면에, 대산면 중산리 일부가 송산면에 각각 편입되었다. 그리고 1987년 1월 1일에 성내면 조동리 일부가 정읍군 소성면에, 고수면 봉산리 일부가 고창읍에, 상하면 송곡리 일부가 해리면에, 성송면 상금리가 대산면에, 신림면 송암리가 흥덕면에 각각 편입되었다.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고창읍의 도산리지석묘(전라북도 기념물, 1981년 지정)를 비롯해 고창읍 월곡리 · 신월리의 고인돌 등 80여 군데 400여 기의 고인돌군이 있다.
산성으로는 1453년(단종 1)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일명 모양성(牟陽城)이라 부르는 고창읍성(사적, 1965년 지정)이 고창읍 읍내리에 있으며, 무장면 성내리에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사적, 1991년 지정)이 있다. 그 밖의 산성지로는 예지마을 산성터, 섬틀봉 산성터, 장사(長沙)성터, 왕촌(旺村)성터, 고산(高山)성터, 고현(高縣)성터 등이 있다.
봉수대터로는 남쪽으로 전라남도 영광군 홍농산에서 연락을 받아 북쪽으로 소응포(所應捕) 봉수대로 전달해 주는 고리포(古里浦) 봉수대터와 검산(劍山)마을 봉수대터가 있다.
요지(窯址)로는 고려청자로부터 조선분청사기로 옮아가는 과도기의 도요지인 고창 분청사기 요지(사적, 1977년 지정)와 고창 용계리 청자 요지(사적, 1991년 지정) 등이 있다.
주요 사찰로는 아산면 삼인리의 선운사, 고수면 은사리에 문수사(文殊寺), 부안면 검산리에 소요사, 고창읍 월곡리에 상원사(上院寺) 등이 있다.
선운사의 경내에는 고창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1963년 지정) · 고창 선운사 도솔암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1963년 지정) · 선운사 대웅전(보물, 1963년 지정) · 선운사참당암대웅전(보물, 1984년 지정) · 선운사참당암석조지장보살좌상(보물, 1963년 지정 제2031호) · 선운사석씨원류 · 선운사영산전목조삼존불상 · 선운사육층석탑 · 선운사범종 · 선운사만세루(보물, 2020년 지정) · 백파율사비 등이 있다. 선운사석씨원류는 1971년, 선운사영산전목조삼존불상은 1973년, 선운사육층석탑은 1973년, 선운사범종은 1973년, 백파율사비는 1986년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문수사의 경내에는 문수사대웅전(전라북도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 문수사문수전(전라북도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과 흥덕면 교운리에 흥덕당간지주(전라북도유형문화재, 1973년 지정) 및 몽불사석조여래좌상, 용화사석조미륵입상 등이 있다.
유교 유산으로는 1512년 (중종 7)에 창건한 고창읍 교촌리의 고창향교, 무장면 교흥리의 무장향교와 무장향교 대성전, 흥덕면 교운리의 흥덕향교와 흥덕향교 대성전이 있다. 무장향교 대성전과 흥덕향교 대성전은 1984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서원과 사우로는 고창읍 주곡리에 현곡정사(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월곡리에 벽산사(碧山祠), 무장면 덕림리에 용오정사(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80년 지정), 상하면 검산리에 계산서원, 대산면 매산리에 화동서원(華東書院), 아산면 운곡리에 운곡서원(雲谷書院), 무장면 교흥리에 충현사, 고수면 상평리에 노산사(蘆山祠), 공음면 칠암리에 도암사(道巖祠), 성내면 옥제리에 옥제사(玉堤祠) 등 많은 사우가 있다.
고창읍 읍내리에 고창신재효고택(중요민속자료, 1979년 지정), 동리에 황윤석 생가(전라북도 민속자료, 1986년 지정), 무장면 성내리에 고창무장객사(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73년 지정) · 고창무장동헌(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73년 지정), 흥덕면 흥덕리에 흥성동헌(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고수면 상평리에 김기서강학당(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 고창읍 화산리에는 취석정(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97년 지정)이 있다.
문헌으로는 성내면 조동리에 이재난고(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84년 지정)가 있다. 국가무형유산으로는 윤도장이 있으며 시도무형유산으로는 성송면의 고창농악이 있다. 윤도장은 1996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고, 고창농악은 2000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천연기념물로는 아산면 삼인리에 고창 선운사 동백나무 숲(천연기념물, 1967년 지정), 장사송(천연기념물, 1988년 지정), 삼인리송악(천연기념물, 1996년 지정)이 있고, 대산면 중산리에 고창 중산리 이팝나무(천연기념물, 1967년 지정), 고수면에 고창 문수사 단풍나무 숲(천연기념물, 2005년 지정)이 있으며, 노거수로는 수령 750여 년 된 심원면 연화리의 귀목나무를 비롯해 공음면 건동리의 팽나무, 성송면 낙양리의 소나무, 심원면 고전리와 연화리의 귀목나무 등이 있다.
기타 국가유산으로 신림면 외화리에 효감천(전라북도 기념물, 1980년 지정), 고창읍에 고창오거리당산(중요 민속자료, 1969년 지정) 등의 국가유산이 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무장향교(茂長鄕校) · 고창향교 · 흥덕향교(興德鄕校)가 있었다. 무장면 교흥리에 있는 무장향교는 1420년(세종 2)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1842년(헌종 8)에 중건하였다.
고창향교는 1512년 (중종 7) 고창읍 월곡리에서 창건되었으나 1589년(선조 22) 교촌리로 이전했으며, 흥덕향교는 1406년(태종 6) 흥덕면 교운리에 창건되었다. 이 밖에 1797년(정조 21) 아산면 운곡리에 운곡서원을 설립했는데, 1868년(고종 5)에 철폐되었다가 1924년에 재건되었다.
또한 1796년 대산면 매산리에 세워진 화동서원은 1896년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1958년 복건되었고, 1718년(숙종 44)에 설립되어 1721년(경종 1)에 사액되었던 성내면 동산리의 동산서원(東山書院)은 1868년에 철폐되었다.
근대교육기관으로는 1908년 사립 동명학원과 사립 무창학원이 개교했으나, 1910년 김영곤(金永坤)이 두 학교를 병합해 사립 무장학교를 설립했으며, 1909년 흥덕학원이 개교해 1915년 흥덕공립보통학교가 되었다. 1918년 사립 오산학교가 설립되었으며, 1922년 사립 고창고등보통학교로 개칭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1개교, 중학교 14개교, 고등학교 6개교가 있다.
고창문화원이 설립되어 군의 축제인 모양성제(牟陽城祭)를 주관하는 등 지역문화 진흥에 이바지하고 있고 그 외 주요 문화행사로는 오거리당산제와 동백연예술제가 있으며, 주요축제로는 수박축제 · 청보리밭축제 · 복분자축제 · 수산물축제 · 해풍고추축제 · 고인돌축제 · 메밀밭축제가 열린다.
고창 지방에서 행해지는 독특한 민속놀이로 성밟기가 있다. 이 놀이는 모양성 위를 걸으면서 노는 것인데, 민속신앙에 놀이의 성격이 겸해진 형태이다. 성밟기는 봄부터 가을까지 수시로 행하지만 윤달에 하면 더욱 좋고, 윤달 중에서도 윤삼월이 특히 좋다고 한다.
또 초엿새 · 열엿새 · 스무엿새와 같이 여섯수가 들어 있는 날이면 저승문이 활짝 열린다 해 더욱 성황을 이룬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군민의 날인 9월 9일에 많이 하게 되었다. 이 성밟기는 부녀자들이 주로 하는데, 먼 지방에서 사람들이 오기도 하고, 개인보다는 단체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성밟기로 성 위를 한 바퀴 돌면 다리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죽어 저승길이 훤히 트여 극락에 갈 수 있다고 한다. 성밟기를 하는 부녀자들은 각기 머리 위에 목침덩이만한 돌을 하나씩 이고, 왼쪽성에서부터 출발해 돈다.
가다가 중간에 있는 6개의 곡성(曲城)과 치성(稚城)에 이를 때마다 미리 준비한 곡식봉지나 동전 몇 푼씩을 놓고, “저승길 노수요.”하면서 합장 삼배하고, 오르막길에 이르면, ‘압록강 건너서’, ‘두만강 건너서’ 저승 극락에 가도록 해달라고 기원한다. 전설에 따르면 이 놀이는 이 성을 쌓을 때 호남 각지의 장정을 다 모으고도 인력이 모자라 여인들까지 동원해 돌을 나르고 밟아 다진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지방의 동제는 지금도 많은 마을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당산의 구성형식과 당산제의 형식이 각기 다른 바가 많다. 대개는 당산나무 · 당산석 · 입석 짐대로 되어 있는 제단인데, 마을 뒤에 천룡, 마을 앞에 당산이라 이름한다. 이 중 오거리당산제는 고창읍내 5개 마을이 지내는 연합동제이다.
지세는 바다에 떠 있는 배의 형국이어서 동서남북 사방과 중앙에 석주당산(石柱堂山)을 두어 무게와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해서 각 마을마다 당산이 있었다. 본래는 당산마다 할아버지당산과 할머니당산이 짝을 이루어 거대한 석주당산과 당산나무가 갖추어졌으나 지금은 많이 파손되었고, 다만 상거리 · 하거리 · 중거리 · 중앙의 당산석주만이 국가유산으로 지정, 보호되고 교촌당산은 파괴된 잔재만 있다.
당산제는 해마다 정월보름에 지내는데 미리 선출된 유사와 제관들은 목욕재계하면서 제사를 준비한다. 걸립 등으로 경비를 마련하는 한편, 연등놀이와 줄다리기의 채비를 한다. 연등은 여러 개의 장대에 횡목을 걸치고 많은 등을 주렁주렁 매단다.
줄다리기줄은 지름 20㎝ 정도의 긴 동아줄인데, 머리에는 양쪽 줄을 하나의 비녀장으로 꿰어서 연결시킬 고를 만든다. 젯날이 되면 먼저 각 마을 단위로 당산제를 지낸 다음 연합제를 행한다. 5개 마을을 동촌과 서촌으로 나누어 동촌샌님과 서촌마님이 중앙당산에서 만나는 형식이다.
양측은 각기 등간(燈竿)에 불을 밝혀 선두에 서고, 동민들이 풍물을 치면서 줄다리기줄을 메고 한 줄로 뒤따른다. 이 때 용감한 사람이 줄머리의 고 위에 타고 그의 선소리에 따라 합창한다. 두 대열이 만나면 양쪽 고가 부딪치면서 고 위에 탄 사람이 먼저 떨어지는 편이 진다. 이 때 서편 마님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해 동편이 짐짓 져주는 것이 상례이다.
고싸움 다음에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먼저 두 줄머리의 고를 하나의 비녀장으로 연결하는데, 이는 샌님과 마님의 교합을 상징해 생산과 풍요의 뜻이 있다. 연등놀이는 양편의 등간에 매단 같은 수의 등불을 먼저 다 꺼버리는 편이 이긴 것으로 된다.
이 지방의 당산에 짐대를 세운 곳이 많다. 짐대는 마한풍속에 솟대[蘇塗]의 유물로 전하는 것이다. 높은 나무 위에 나무로 만든 새를 둔다. 이 짐대는 해마다 만들어 세우고 당산제가 끝나면 줄다리기를 한 줄을 짐대에 감아둔다. 이 짐대가 남아 있는 곳은 신림면 무림리 한 곳뿐이다.
고창군에는 여러 개의 짤막짤막한 설화가 전한다. 「진흥왕과 선운사 전설」은 신라 진흥왕이 불교에 심취한 나머지 왕위를 물려주고 선운사에 들어가 스스로 법운자(法雲子)라 칭하고 중으로서 일생을 마쳤다 하는데, 도솔암은 왕비를 위해, 중애암은 공주를 위해 진흥왕이 건립했다는 이야기이다.
「밤내골 달래의 효심 전설」은 겨우 열두 살 소녀인 달래가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새벽마다 지성으로 불공을 드렸는데, 어느 날 신령이 나타나 마을 앞 냇가의 버드나무 밑에 가면 뱀의 알이 있을 것이니, 그것을 삶아서 먹으면 아버지의 병이 나을 것이라 해 신령의 말대로 했더니, 아버지의 병이 깨끗이 나았다는 이야기이다. 이로부터 그 내를 뱀내[蛇川]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각시바위전설」은 불심이 깊은 어느 여인이 운선암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중이 유방을 만지자 젖꼭지를 자르고 자살해 버렸는데, 그 뒤 중이 그 여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양춘암이라는 바위에 초상을 새기니 먹구름이 끼면서 젖꼭지가 떨어져 피가 흘러나왔다는 이야기인데 지금도 여전히 피가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검당마을과 염정설화」는, 선운사에서 멀지 않은 바닷가에 검당마을이 있었는데, 이 이름은 고려 때의 고승 검단(黔丹)에서 연유된 것으로, 검단이 선운사에 머무르고 있을 때 선운사 골짜기에 본거를 정하고 백성들을 괴롭히던 도둑들을 타일러 이 곳에서 소금을 굽게 해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주었다는 이야기이다.
「말과 되바위 전설」은 백제 초기에 최씨성을 가진 장수가 큰 바위를 가지고 중국으로 가던 중 만리장성의 성쌓기가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 바위를 아랫마을에 버리고, 그 밑에 굴을 파고 살면서 바위에 구멍을 파서 주민들에게 말[斗]과 되[升]로 쓰도록 했다는 이야기로 지금도 말바위 · 되바위라고 한다. 그 밖에 「깨진 바위 전설」 · 「애기바위와 구두쇠영감 전설」 · 「망북단의 사연 전설」 등이 전한다.
고창군에는 전라북도의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노동요 중 벼농사와 관련된 민요가 많다. 벼농사에 부르는 민요에는 봄에 논물을 대기 위해 물두레질을 하며 부르는 「물두레질소리」, 모를 심으며 부르는 「모심기소리」, 논에 김을 매며 부르는 「논매기소리」, 논매기나 추수를 끝내고 돌아오면서 혹은 놀면서 부르는 「장원질소리」가 있다.
「모심기소리」는 3분박 4박자로 메기고 받는 「상사소리」가 불리는데, 선율은 「농부가」로 알려진 민요와 같다. 논매기는 대개 ‘초벌’ · ‘두벌’ · ‘세벌’이라 해 세 번을 매는데, ‘초벌’과 ‘두벌’에는 선소리꾼이 긴 사설을 촘촘히 엮어서 메기면, 김매는 일꾼들은 “어기야 아.” 하고 받는다.
초벌과 두벌의 「김매기소리」는 메기는 소리나 받는 소리가 모두 일정한 장단이 없는 자유리듬으로 불린다. 세벌 「김매기소리」로는 전라남도 나주지방과도 같은 「절사소리」를 부른다. 가을에 추수가 끝나고 들에서 마을로 돌아오며, 그 해에 가장 일을 열심히 한 일꾼을 뽑아 소에 태우고 놀면서 부르는 「장원질소리」로는 「풍년가」의 원형인 「지화자소리」를 한다.
이 밖에도 전래민요로 「반닥지타령」 · 「거무타령」 · 「꼬리까기요」 등이 있다. 「반닥지타령」에서 반닥지는 오지자배기를 말하는데, 그것을 깨고 아까워하는 뜻과 함께 정든 낭군과의 사별로 깨어진 사랑의 안타까움을 연결시켜 노래한 것이다.
그 일부를 보면, “열일곱에 산 반닥지/사랑에홀사 내반닥지/일흔일곱에 깨고나보니/유정할사 내반닥지/사발에 사촌 들어보소/오가리 오촌 들어보소…….”하는 것으로 그릇을 의인화한 노래이다.
「거무타령」은 “……가 많은 잔치에 왔다가 · 그냥 갈 수 있느냐/술이나 한탕 불러가/이 술에 저 술에 도파술/술일랑은 불렀시나/너물채소를 불러봐/주먹같다 고사리너물/고부자 장장 콩너물/이골저골 양해너물/한푼두푼 풋너물/들었다 놓았다 잡채너물…….”과 같이 거미를 노래한 것으로, 잔치에 구경 온 거미가 술 · 너물 · 탕 · 고기 등을 맛보는 장면이 계속된다. 약간 가사가 다른 「거무타령」도 있다.
「꼬리까기요」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일종의 언어유희라고 할 수 있다. 앞의 말을 받아 계속 이어가는 민요로, 동요에서도 가끔 볼 수 있는 형태이다.
“동무야 나무가자/배아파서 못가겠네/먼배 자라배/먼자라 업자라/먼업 솔업/먼솔 전주솔/먼전주 뉘비전주/먼뉘비 전주뉘비.” 이 「꼬리까기요」는 이 지방에서 불린 「동무타령」과 비슷하다.
소요산에는 질마재라는 고개가 있고, 그 고개이름을 따서 그 옆 마을을 질마재마을이라 한다. 그 곳의 여인들 사이에서는 강강술래놀이가 전해오는데, 그 연희에 따르는 민요로 「강강술래」 · 「남문열기」 · 「담넘기」 · 「지와밟기」 · 「덕석몰이」 · 「징금마야」 등이 있다.
그 가운데서 「지와밟기」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디꼴 지양가/지야꼴 지야네/멧장이나 볼○능가/서른댓장 볼○네/어디꼴 지양가/지야꼴 지야네/멧장이나 볼○능가/서른댓장 볼○네/멧장이나 볼○능가/서른댓장 볼○네.”
그 밖에도 「들노래」 · 「기음노래」 · 「노리개타령」 · 「베틀가」 · 「과부노래」 · 「댕기노래」 등이 있다.
긴 해안선을 끼고 있고, 산지도 있으나 평지가 많아 대부분 농경지로 이용된다. 총경지면적은 2만 4,852㏊로 경지율이 41.3%이며, 그 가운데 논이 1만 5,084㏊로 60.7%이다. 논은 인천강과 고수천 유역의 충적평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구릉지 사이의 골짜기에 분포해, 경지정리율이 낮고 농업용수도 작은 저수지나 관정을 통해 공급받아 수리불완전답이 많아 주변에 있는 동림저수지 · 궁산지 · 조산저수지 등에서 관개 농업용수로 이용된다.
밭은 군내에 넓게 발달한 해발 50m 내외의 구릉지를 197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개발해 크게 증가하였다. 쌀 이외에 땅콩과 무 · 배추 · 수박 · 고추 등의 채소류 재배가 활발하다. 이들 밭작물은 대규모로 재배되어 서울 등 대도시로 출하되며, 위탁영농이 많이 이루어진다. 특히 수박과 땅콩은 전국적인 주산지이다.
고창수박은 우수한 품질로 명성이 높고, 주산지인 대산면에서는 여름철에 수박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인접한 정읍시와 함께 도내에서 고추의 주산지이다. 그 밖에 약초 및 잎담배도 많이 재배된다. 근래에는 사과 · 배를 중심으로 한 과수원과 인삼 재배면적이 많이 증가했고, 축산업도 비교적 활발해 한우 · 젖소 · 돼지 · 닭 등의 사육 마리수가 증가하고 있다.
80여 ㎞에 달하는 긴 해안선에 비해 수산업은 활발하지 못한 편이다. 어업가구 비중이 1.7% 정도에 불과하며 그 대부분인 86.9%가 겸업가구로 영세하다. 주요 수산물은 새우 · 갈치 · 홍어 등이며 김 · 조개류의 양식이 행하여진다.
특히 해안선의 간척지에서는 천일제염이 활발해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심원면의 삼양염업사, 해리면의 해리염전 등을 비롯해 구시공사 등의 크고 작은 염전이 산재해 있어 여기서 만들어진 천일염은 전국 각지로 출하되고 있다.
공업발전은 미비하다. 군내에는 고수면과 아산면에 각각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가동중이다. 성송면의 땅콩 가공공장 등 몇 개의 농산물 가공공장과 도자기 · 한지공장 등이 있으며, 근래에 조성된 농공단지에는 전기 · 전자 업체 등이 입주하였다.
상업 및 서비스업은 고창읍을 중심으로 의류 · 건축자재 등이 거래되고 있으나 부진한 편이다. 고가의 상품이나 교육 · 문화 등의 서비스는 대부분 정읍과 광주 등에 의존하고 있다.
시장은 고창읍에 상설시장 1개소와 6개소의 정기시장이 있으나 대부분 규모가 작다. 읍내리에 있는 상설시장인 고창시장은 채소 · 청과 · 의류 · 생활필수품 등이 거래되며, 정기시장도 선다. 정기시장은 5·10일에 무장장과 부안장, 4·9일에 흥덕장과 해리장, 2·7일에 대산장, 1·6일에 상하장이 개설되며, 곡물과 어류가 주종을 이룬다. 장날에 같이 서는 가축시장에서는 많은 가축들이 거래되는데 해리시장이 특히 유명하다.
특산물로 고수면 와촌리 사기점(沙器店)의 고수자기와 선운사의 복분자술 · 작설차 · 풍천장어, 성내면 덕산리의 대추나무나침반 등이 있다.
교통은 익산∼부안과 전라남도 영광∼나주를 잇는 국도가 군의 동부에서 흥덕 · 고창 · 대산을 통과하며, 군의 서부 해안지방에는 정읍에서 흥덕을 지나 전라남도 법성포 · 영광에 이어지는 국도가 지나간다.
군의 중앙에는 이들 국도를 연결하는 여러 지방도가 고창읍 · 해리면 · 공음면 · 무장면을 중심으로 교차해 각지를 연결한다. 전주보다 광주와의 거리가 더 짧아 광주와의 교류가 활발했지만, 최근 전주와 4차선 고속화도로가 개통되어 전주와의 교통이 매우 편리해졌다.
호남고속도로는 군내를 통과하지 않으며, 인접한 정읍인터체인지와 전라남도의 장성인터체인지를 통해서 진입하며, 호남고속도로의 지선인 고창담양고속도로가 군내를 지나고 있어, 장성군과 전라남도 담양군은 연결하고 있다. 인천에서 목포를 잇는 서해안고속도로가 군의 중앙을 통과하고 있어 교통 사정이 크게 개선되었다. 겨울에는 눈이 많아 고창과 영광 사이의 국도 통행에는 어려움이 많다.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리는 선운산과 해안의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많은 국가유산을 간직하고 있어 관광여건이 좋다.
모양읍성은 국내 유일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자연석 성곽인데 전라남도 순천의 낙안읍성과 충청남도 서산의 해미읍성에 비하면 내부구조 보존이 미흡하다.
아산면에 위치한 선운산에는 명승고찰인 선운사가 있고 울창한 수림과 깊은 계곡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1400년의 역사를 지닌 선운사에는 많은 국가유산이 간직되어 있고 사찰 뒤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나무숲이 유명하다.
진흥굴과 도솔암을 올라 낙조대에 이르는 등산로는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리는 절경이다. 낙조대에서 황해로 지는 해를 감상할 수 있고 눈 아래 펼쳐지는 도솔계곡의 절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이 계곡은 화산암의 암석경관이 빼어나다.
선운사를 중심으로 하는 선운산은 1979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84년에는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도로가 포장되고 관광단지가 개발되어 부근에 청소년 수련장인 선운사 자연의 집과 사하촌 일대는 숙박업소, 음식점, 선물코너, 주차장, 취사장 등 각종 편의시설이 집결해 있어, 연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이용하고 있다.
한편 해안에는 울창한 소나무숲이 있고 염도가 높은 바닷물로 유명한 해리면의 동호(冬湖)해수욕장과 상하면의 구시포(仇時浦)해수욕장, 예로부터 여인들이 즐겼던 해수탕욕이 유명한 흥덕면의 사포리(沙浦里)해수욕장 등은 천연의 피서지로서 부근의 자연경관과 어울려 새로운 관광지로서 각광받고 있다.
또한 고창읍에는 석정온천이 개발되어 전주와 광주 등지에서 찾는 이가 많다. 군내 무장(茂長)에는 옛 읍성의 남문과 객사가 보존되어 있고, 군내에는 도내에 분포하고 있는 지석묘 330여 기 중 100여 기가 군내 해리면, 부안면 일대에 집중 분포하고 있어 역사관광지의 구실도 겸하고 있다. 그리고 유네스코에서는 세계문화보존지구로 지정을 하였다.
군에서는 일정별관광(당일 ·1박2일 ·2박3일코스), 계절별관광(봄 · 여름 · 가을 · 겨울), 체험여행(갯벌생태체험 · 농촌체험관광마을 · 도자기체험 · 복분자체험), 등산(선운산 · 방장산) 등 다양한 관광루트를 개발하여 안내하고 있다.
군의 동부에 위치한 읍. 면적 42.50㎢, 인구 2만 2320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교촌리이다. 본래 고창군 지역으로 시내 남쪽이 되므로 천남면(川南面)이라 해 동부(東部) · 학림(鶴林) · 서부(西部) · 덕산(德山) · 내동(內洞) 등 1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천북면(川北面)과 오동면(五東面) 일부, 고사면(古沙面) 일부를 병합해 고창읍내의 이름을 따서 고창면으로 되었다가 1955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읍의 동부는 노령산맥 서사면의 주봉인 방장산(方丈山) 등 500∼600m의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서북부의 100m 내외 야산지대 사이의 분지 위에 구릉지와 서쪽으로 향한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다.
읍의 중앙을 인천강이 흘러 벼농사지역이 펼쳐지고 주변은 밭농사지대이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쌀 · 보리 · 고구마 · 낙하생 · 수박 등이 많이 생산되고 고추 · 담배 · 과일 및 원예작물이 생산된다. 교통은 김제 · 부안 · 영광을 잇는 국도가 남북으로 달리고, 무장 · 장성 · 북일 사이의 국도가 동서로 교차해 결절점을 이루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읍내리에 신재효고택 · 모양산성(고창읍성) · 공북루, 교촌리에 고창향교, 도산리에 고인돌, 주곡리에 현곡정사 · 영귀정 등이 있다. 교촌(校村) · 읍내(邑內) · 월곡(月谷) · 월암(月巖) · 석정(石汀) · 월산(月山) · 노동(蘆洞) · 화산(花山) · 내동(內洞) · 덕산(德山) · 주곡(蛛谷) · 도산(道山) · 죽림(竹林) · 신월(新月) · 덕정(德井) · 율계(栗溪) · 석교(石橋) · 성두(星斗) 등 18개 리가 있다.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45.58㎢, 인구 2,47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황산리이다. 본래 고창군 고사면의 지역으로 성산(城山) · 구룡(九龍) · 와촌(瓦村) 등 32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창군 고사면과 수곡면(水谷面)을 통합해 고수면이라 하였다.
1933년 오산면의 봉산 · 우평 · 남산 · 예지 · 인성리 등의 5개 리를 편입하였다. 면의 남동부는 노령산맥의 문수산(文殊山)이 솟아 산지지형을 이루나 북서부는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쌀 · 보리 · 고구마 · 담배 · 고추 · 낙하생 등이 재배되고 대단위 야산개발이 이루어졌다.
교통은 고창 · 영광을 잇는 국도가 통과해 도로교통이 편리하며, 고창읍과 인접해 주민의 생활권이 고창읍과 연결되어 있다. 면 남동부의 조산저수지는 관개용수 공급원이고 낚시터로도 이름이 나 있다.
문화유적은 은사리의 문수사에 문수사대웅전과 문수전, 상평리에 김기서강학당이 있고 와촌리의 고수자기에서는 고려청자의 상감류와 분청사기류, 조선자기의 재현에 힘쓰고 있다.
황산(黃山) · 와촌(瓦村) · 상평(上坪) · 부곡(芙谷) · 장두(長斗) · 초내(草乃) · 평지(平支) · 두평(斗坪) · 은사(隱士) · 봉산(蜂山) · 우평(牛坪) · 남산(南山) · 예지(禮智) · 인성(仁城) 등 14개 리가 있다.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50.06㎢, 인구 2,91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칠암리이다. 본래는 무장군 지역으로 동음치면이라 하며 송운(松雲) · 신흥(新興) · 두암(斗岩) 등 23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와공면(瓦孔面)과 동음면(冬音面)을 통합해 와공과 동음치의 이름을 따서 공음면이 되었다.
서북부는 송림산을 중심으로 200∼300m의 산지를 이루고, 동남부는 구릉지를 형성하고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쌀 · 보리를 비롯한 주곡작물 중심이고 담배도 생산된다. 교통은 대산 · 무장 · 상하면과 전라남도 영광으로 통하는 도로가 교차해 편리하다.
이 면은 전라남도와 인접해 있고 한때 전라남도 영광군에 속했던 곳으로 광주생활권에 속한다. 문화유적은 칠암리의 도암사, 군유리의 도봉사(道峰祠)가 있다. 칠암(七巖) · 두암(斗巖) · 신대(新垈) · 구암(九巖) · 석교(石橋) · 장곡(壯谷) · 용수(龍水) · 선동(扇洞) · 건동(建洞) · 군유(群儒) · 예전(禮田) · 덕암(德巖) 등 12개 리가 있다.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43.84㎢, 인구 3,91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매산리이다. 본래 무장군 지역으로 장자산이 있으므로 장자산면이라 해 장동 · 입암 · 춘산 등 14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장군의 대사(大寺) · 대제(大梯) · 장하(壯荷) 등 3개 면이 통합되어 대제와 장자산의 이름을 따서 대산면이 되었다.
서부의 장자산을 제외하고는 모두 높이 50m 내외의 구릉과 충적지로 되어 있어, 경지율이 60% 정도로 많고, 야산지대가 많아서 논 · 밭의 비율이 반반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등의 주곡작물과 땅콩과 수박의 재배가 활발해 경인 각지로 출하되며, 야산 개발에 의한 땅콩재배는 기업적 규모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젖소사육도 활발하다.
교통은 전주 · 고창 · 영광을 잇는 국도가 면의 동남부를 관통해 편리하고 주민의 생활권은 인접한 전라남도 영광읍에 의존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중산리의 이팝나무 자생단지와 매산리의 화동서원, 춘산리의 신산사(新山祠) 등이 있다.
매산(梅山) · 해룡(海龍) · 갈마(渴馬) · 춘산(春山) · 지석(支石) · 산정(山亭) · 중산(中山) · 성남(城南) · 광대(光大) · 덕천(德川) · 율촌(栗村) · 연동(蓮洞) · 대장(大壯) · 회룡(回龍) · 상금(上金) 등 15개 리가 있다.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43.78㎢. 인구 3,23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성내리이다. 본래 무장군 지역으로 무장읍내 동쪽이 되므로 이동면이라 해 안정(安亭) · 백양(白羊) 등 22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장군의 일동면(一東面)과 이동면(二東面)이 통합되어 무장군의 이름을 따서 무장면이 되었으며, 1935년에 구역개편에 따라 석곡면의 일부가 편입되었다.
이 면의 서북부는 한제산(漢堤山, 209m), 송림산 등 200∼300m 고도의 산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동부와 남부에는 평야가 펼쳐져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과 보리 등 주곡작물과 담배 생산이 행해지고 있다.
교통은 면의 중심지인 성내리와 무장리는 고창읍과 해리, 법성포, 성송간의 국도가 교차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성내리에 객사와 동헌이 있고, 남문과 토성 등이 있다. 교흥리에 무장향교, 덕림리에 덕림사가 있다.
성내(城內) · 무장(茂長) · 교흥(校興) · 송현(松峴) · 원촌(院村) · 강남(江南) · 목우(牧牛) · 덕림(德林) · 옥산(玉山) · 고라(古羅) · 백양(白羊) · 신촌(新村) · 만화(萬化) · 월림(月林) · 도곡(道谷) · 송계(松溪) 등 16개 리가 있다.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53.29㎢, 인구 3,10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중흥리이다. 본래 흥덕군 지역으로 부안면이라 해 중보(中洑) · 덕흥(德興) · 계곡(鷄谷) 등 38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서면의 일부를 병합해 다시 부안면이 되었으며, 1935년 벽사면의 일부가 편입되었다. 1906년 흥덕군의 부외(富外) · 부내(富內) 두 면을 병합해 고창군 부안면이 되었다.
면의 남서부는 소요산 등 300∼400m의 산지들이 넓은 면적을 차지해 남쪽의 아산면까지 뻗어 있고 그 외 지역은 구릉지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등의 주곡농업이 중심이고 축산업과 양잠업을 한다.
교통은 정읍과 해리 사이에 지방도가 통하고 있으나 남부 산간지방은 교통이 불편하다. 문화유적은 수동리에 분청사기요지, 검산리에 소요사, 봉암리에 김성수의 생가가 있다. 중흥(中興) · 오산(鰲山) · 수남(水南) · 검산(劍山) · 수동(水東) · 수앙(水央) · 봉암(鳳巖) · 상암(象巖) · 송현(松峴) · 선운(仙雲) · 용산(龍山) · 상등(上嶝) · 사창(社倉) · 운양(雲陽) 등 14개 리가 있다.
군의 남서부 황해안에 위치한 면. 면적 32.96㎢, 인구 2,70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하장리이다. 본래 무장군지역으로 장사현의 위쪽이 되므로 상리면이라 해 평곡(平谷) · 장호(長湖) · 장룡(壯龍) 등 19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리면의 고이포 · 석남 · 갈오 등 12개 리와 오리동면의 일부, 전라남도 영광군 홍농면의 일부를 병합해 상리와 하리의 이름을 따서 상하면이 되었다.
동부와 북부는 100∼200m의 낮은 산지이고 기타지역은 50m 이하의 낮은 구릉지이다. 해안에는 6∼7㎞의 해안사구가 발달해 명사십리라 불리는 피서지로 유명한 구시포해수욕장이 있다. 주요 산업은 쌀 · 보리 등을 재배하는 주곡농업이고 해안에는 조기 · 민어 · 홍어 등의 어로와 수산양식업이 행해지고 있다.
구시염전에서는 천일제염을 한다. 교통은 공음과 해리를 연결하는 지방도가 있으나 전주 · 익산 · 정읍 등의 도시지역과의 교통이 불편해 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 문화유적은 계산리에 계산사가 있다. 하장(下長) · 장산(壯山) · 장호(長湖) · 용정(龍井) · 자룡(紫龍) · 석남(石南) · 용대(龍垈) · 검산(劍山) · 송곡(松谷) 등 9개 리가 있다.
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30.84㎢, 인구 2,22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양계리이다. 본래 흥덕군 지역으로 일동면이라 해 생근(生芹) · 관정(冠井) · 기동(基洞) · 도덕(道德) 등 3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일동면(一東面)과 이동면(二東面)의 일부를 병합해 성내면이 되었다. 면 전체가 50m 내외의 구릉과 충적평야로 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고추 · 고구마 등을 주로 재배하고 흥덕면과의 사이에 있는 동림저수지는 정읍시 고부면과 영원면의 주요 관개용수 공급원이다. 교통은 전주와 전라남도 영광을 잇는 국도가 통과하고 있어 정읍과의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옥제리의 옥제사(玉堤祠), 조동리의 구동사(龜東祠), 덕산리의 관풍정 등이 있다. 양계(陽桂) · 월성(月城) · 조동(槽東) · 부덕(富德) · 덕산(德山) · 신성(新星) · 동산(東山) · 월산(月山) · 옥제(玉堤) · 대흥(大興) · 신대(新大) · 산림(山林) · 용교(龍橋) 등 13개 리가 있다.
군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36.25㎢, 인구 2,05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판정리이다. 본래 무장군 지역으로 성동면이라 해 관동(冠洞) · 호동(虎洞) · 낙양(洛陽 등 26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장군의 성동(星洞) · 원송(元松) · 대제(大梯) 등 3개 면을 병합해 성동과 원성의 이름을 따서 성송면이 되었다. 면의 동부는 300∼500m 정도의 구릉성산지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고구마 등으로 주곡농업 위주이나 최근에는 잎담배 · 고추 · 참깨 등의 수익성 작물 재배도 활발하다. 고창읍과 영광간의 국도가 통과해 교통은 편리하며, 교육 · 문화 · 상업 기능은 거의 고창읍에 의존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하고리에 무송현터, 암치리에 강응환가전유물과 낙양리에 오래된 소나무가 있다. 판정(板井) · 암치(巖峙) · 무송(茂松) · 하고(下古) · 산수(山水) · 계당(溪堂) · 향산(香山) · 괴치(槐峙) · 낙양(洛陽) · 사내(沙乃) · 학천(鶴天) 등 11개 리가 있다.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40.90㎢, 인구 2,45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무림리이다. 본래 흥덕군 지역으로 흥덕의 남쪽이 되므로 일남면이라 해 가평(加平) · 백계(白溪) · 갈촌(葛村) · 월계(月溪) 등 2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흥덕군의 일남(一南) · 이남(二南) 두 면을 통합해 신평과 임리의 이름을 따서 신림면이 되었다.
동부는 노령산맥의 서사면으로 방장산이 솟아 있어 고산지이나 북서부는 50m 내외의 구릉지를 형성하고 있다. 주요 산업은 쌀 · 보리 · 고구마 등의 주곡작물 재배이고 근년에는 고추 · 채소 등의 재배도 활발하다. 교통은 전주와 영광을 잇는 국도가 면의 서부를 통과하므로 편리하다.
상업 · 교육 · 문화 기능은 고창읍에 의존한다. 문화유적은 외화리에 효감천과 용강사(龍岡祠) · 창효사, 가평리에 도동사 등이 있다. 무림(茂林) · 외화(外貨) · 도림(道林) · 덕화(德化) · 가평(加平) · 신평(新平) · 반룡(盤龍) · 세곡(細谷) · 자포(子抱) · 법지(法止) · 송룡(松龍) · 벽송(碧松) · 부송(扶松) 등 13개 리가 있다.
군의 북서부 해안에 위치한 면. 면적 40.07㎢, 인구 2,80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월산리이다. 본래 무장군 지역으로 심원면이라 해 난호(蘭湖) · 만돌(萬突) · 두어(斗於)등 1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창군에 편입되었다. 동부는 경수산 · 개이빨산 등 300∼400m 높이의 산지이다. 서부는 50m 내외의 구릉지와 해안에 간석지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경지율이 45%이고 쌀 · 보리 · 고구마 등이 재배되고 있다. 해안지방에서는 조기 · 갈치 · 홍어 등의 어업과 하전리를 중심으로 바지락양식이 행해지고 있다. 부근에 삼양염전이 개발되어 천일제염으로 소금을 생산하고 있다.
교통은 흥덕과 해리간을 연결하는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면의 남부는 교통이 불편하다. 해안으로 치우쳐 있어 전주 · 고창 · 정읍을 연결하는 교통이 불편해 지역발전에 지장을 주고 있다. 부근 산지에서는 야생난의 자생이 많다.
문화유적은 월산리에 경모사(景慕祠)가 있다. 월산(月山) · 궁산(弓山) · 주산(珠山) · 고전(高田) · 만돌(萬突) · 두어(斗於) · 도천(道川) · 연화(蓮花) · 하전(下田) · 용기(龍其) 등 10개 리가 있다.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74.73㎢, 인구 3,05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하갑리이다. 본래 고창군 지역으로 대아면이라 해 회진(會津) · 쌍천(雙川) · 추동(秋洞) · 선동(仙洞) 등 33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창군의 대아면(大雅面) · 산내면(山內面)을 병합해 대아와 산내의 이름을 따서 아산면이 되었다.
1935년 석곡면의 일부가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북부는 200∼300m 정도의 산지이고 대부분이 50m 내외의 구릉지로 경지율은 20% 정도로 낮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 · 보리 · 고구마 · 콩 등이 재배된다. 근래에는 담배재배도 활발하다.
교통은 고창읍과 무장을 잇는 도로가 면의 남부를 지나고 심원으로 가는 해안도로가 개설되어 일주가 가능하다. 문화유적은 삼인리의 선운사 경내에 금동보살좌상 · 지장보살좌상 · 대웅전 · 나한전 · 석씨원류 · 영산전 · 목조삼존불상 · 육층석탑 · 동불마애석불 등이 있고 동백나무숲도 유명하다. 그 밖에 대동리에는 기산사, 학전리에는 덕천사가 있다.
하갑(下甲) · 봉덕(鳳德) · 중월(中月) · 목동(木洞) · 상갑(上甲) · 주진(舟津) · 대동(大東) · 운곡(雲谷) · 용계(龍溪) · 계산(鷄山) · 구암(九巖) · 반암(盤巖) · 남산(南山) · 성산(星山) · 학전(鶴田) · 삼인(三仁) 등 16개 리가 있다.
군의 서부 해안에 위치한 면. 면적 39.53㎢, 인구 3,15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하련리이다. 본래 무장군 지역으로 오리동면이라 해 동호(冬湖) · 외경(外景) · 상부(上阜) · 광승(光升) 등 22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장군의 청해면(靑海面)과 오리동면을 통합해 청해와 오리동의 이름을 따서 해리면이 되었다.
북동부는 조지산(造知山, 225m) · 청룡산(靑龍山, 314m) 등이 솟아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서부와 남부에 평야가 전개되어 벼농사를 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고구마 등 주곡을 생산하는 농업이 주이고 고추 · 잎담배 등 수익성작물도 재배다. 해안에서는 갈치 · 민어 · 홍어 · 새우 등의 어로가 행해지고 수산양식업과 제염업도 활발하다. 해리염전에서 생산되는 해리소금은 이 지방 특산물로 유명하다.
교통은 공음∼해리, 무장∼해리간의 지방도가 교차해 편리하다. 동호리에는 해수욕장이 있어 여름철에 피서객이 많이 모여든다. 해안에 치우쳐 있어 전주 · 익산 · 군산 · 정읍 등지 도시지역과의 접촉이 적어 한계지역이다.
유물유적으로는 송산리의 송양사(松陽祠), 남산사(南山祠) 등이 있다. 하련(下連) · 평지(平地) · 고성(古星) · 송산(松山) · 안산(安山) · 왕촌(旺村) · 방축(防築) · 금평(金坪) · 광승(光升) · 동호(冬湖) · 사반(巳盤) · 나성(羅城) 등 12개 리가 있다.
군의 북부인 서해안의 곰소만에 위치한 면. 면적 33.39㎢, 인구 3,63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흥덕리이다. 본래 흥덕군 지역으로 흥덕읍내가 되므로 현내면이라 해 한림(翰林) · 녹사(綠沙) · 동문(東門) 등 13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흥덕군의 현내면(縣內面)과 북면(北面)을 통합해 고창군 흥덕면이 되었다.
193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벽사면(碧沙面)의 일부가 편입되었고, 1973년 신림면의 제하리(堤下里)가 편입되었다. 전체가 50m 미만의 구릉지이며 고부천 유역에는 충적평야가 발달해 있다.
주요 농산물로 쌀 · 보리 · 고추 · 고구마 등을 재배하고, 성내면과의 경계에 위치한 동림저수지는 고부천 유역의 넓은 충적평야에 관개용수를 공급하는 수원이다. 해안의 후포리를 중심으로 갈치 · 홍어 · 민어 등의 어업과 수산양식업도 행하고 있다.
전주∼영광간, 정읍∼고창간, 고창∼부안간의 도로가 교차해 교통이 편리하다. 교육 · 문화기능은 정읍에 의존도가 크다. 문화유적은 흥덕리의 객사, 교운리의 당간지주 · 흥덕향교 대성전이 있다.
흥덕(興德) · 동사(東沙) · 제하(堤下) · 치룡(峙龍) · 신송(新松) · 석우(石隅) · 하남(下南) · 용반(龍盤) · 송암(松巖) · 신덕(新德) · 후포(後浦) · 오호(五湖) · 사포(沙浦) · 교운(校雲) · 석교(石橋) · 사천(沙川) 등 16개 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