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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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인물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포산에 은거하며 수행한 승려.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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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포산에 은거하며 수행한 승려.
생애

『삼국유사』의 포산이성조(包山二聖條)에 따르면 관기는 도성(道成)과 함께 포산의 남북에 은거하여 서로 왕래하면서 도를 구했다. 도성이 관기를 부르고자 하면 산속의 나무가 모두 관기 쪽을 향해 굽혔으므로 그것을 보고 도성이 관기를 찾았다고 하였다.

이 기사는 신라 아미타 신행의 일례를 보여주는 것으로 그 시기는 대략 경덕왕 이후로 추정된다. 그뒤 982년(성종 9)에 승려 성범(成梵)이 두 고승이 거처했던 곳에 만일미타도량(萬日彌陀道場)을 열고 50여년 동안 정근하였으며, 그때 시주받은 향나무에서 빛이 발하는 등 여러 상서로운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상서가 관기와 도성, 즉 포산의 산악신인 정성천왕(靜聖天王)의 영험 때문이라고 보았다. 산속에는 9인의 성인이 출현했다고 하는데, 관기는 그 중 한 사람이다. 포산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비슬산으로, 그곳에는 그가 머물렀다는 관기암 터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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