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의 포산이성조(包山二聖條)에 따르면 관기는 도성(道成)과 함께 포산의 남북에 은거하여 서로 왕래하면서 도를 구했다. 도성이 관기를 부르고자 하면 산속의 나무가 모두 관기 쪽을 향해 굽혔으므로 그것을 보고 도성이 관기를 찾았다고 하였다.
이 기사는 신라 아미타 신행의 일례를 보여주는 것으로 그 시기는 대략 경덕왕 이후로 추정된다. 그뒤 982년(성종 9)에 승려 성범(成梵)이 두 고승이 거처했던 곳에 만일미타도량(萬日彌陀道場)을 열고 50여년 동안 정근하였으며, 그때 시주받은 향나무에서 빛이 발하는 등 여러 상서로운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상서가 관기와 도성, 즉 포산의 산악신인 정성천왕(靜聖天王)의 영험 때문이라고 보았다. 산속에는 9인의 성인이 출현했다고 하는데, 관기는 그 중 한 사람이다. 포산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비슬산으로, 그곳에는 그가 머물렀다는 관기암 터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