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익필의 문인 심종직(沈宗直)이 1622년(광해군 14) 홍산군수(鴻山郡守)로 재직하고 있을 때 정엽(鄭曄)·신흠(申欽)의 서문과 김장생(金長生)의 발문을 실어 시집 1권을 간행하였다. 그 뒤 1642년(인조 20) 김상성(金相聖)이 잡저(雜著) 1권과 서(書) 1권을 합편하여 전집을 만들고, 「현승편(玄繩編)」·「예문답(禮問答)」·「가례주설(家禮註說)」과 부록, 송익필의 동생 송한필(宋翰弼)의 『운곡집(雲谷集)』을 함께 실어 간행하였다. 권말에 김상성의 간기(刊記)가 있다.
목판본. 11권 5책. 규장각 도서에 있다.
권1·2에 부(賦) 1편, 시 449수, 권3에 잡저 4편, 제문(祭文) 4편, 명(銘) 2편, 애사(哀詞) 1편, 권4·5에 현승편, 권6에 예문답, 권7∼9에 가례주설, 권10에 부록으로 김장생·서성(徐渻)·정엽 등의 연명으로 된 신원소(伸寃疏), 행장(行狀)·묘갈문(墓碣文)·묘표(墓表)·제문, 홍계희(洪啓禧)가 포상과 증직을 청하기 위해 올린 장(狀), 연설(筵說)·예조복달(禮曹覆達), 정엽과 신흠의 서문, 김장생의 발문, 장유(張維)의 현승편발, 박세채(朴世采)의 변(辨)이 수록되어 있으며, 권11은 『운곡집』이다.
시들은 모두가 솔직하고 담아하며 음미할수록 격과 여운이 있다. 특히, 성혼이 앓아누워 있을 때 보낸 서신을 성혼이 죽은 뒤에야 받고서 그리움과 슬픔을 못 이겨 노래한 「억우계(憶牛溪)」, 정철이 중국에 사신으로 가면서 나와 보지 않는다고 나무란 글을 받고 읊은 「송송강조천(送松江朝天)」, 조헌(趙憲)이 창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감회를 나타낸 「문조헌창의(聞趙憲倡義)」 등에서 이러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백마강(白馬江)」·「궁원(宮怨)」 등은 역사 속에 묻혀버린 애끊는 옛정을 회상하는 애절한 가락들이다. 시의 또 다른 특징은 「백발(白髮)」·「족부족(足不足)」·「망월(望月)」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보통의 정형 한시와는 달리 같은 뜻과 같은 글자를 계속 되풀이해 쓰면서 그 의미를 남김없이 표출하는 방법이다.
잡저 가운데 「태극문(太極問)」은 이기(理氣)에 관한 문제를 주희의 어의(語意) 범주 내에서 일문일답식으로 꾸민 것으로, 노장(老莊)과 불가(佛家)의 설을 등장시켜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이기와 비교함으로써 태극·음양·길흉·동정·오행·사시 등 다방면의 문제를 이기와 결부시켜 설명하고 있다.
「현승편」은 서간과 별지를 모은 것으로 일명 「변론서척(辯論書尺)」이라고도 하는데, 송익필이 이이·성혼 등과 성리학을 비롯하여 경전·자사(子史) 등 학문전반에 걸쳐 주고받은 내용을 모두 수록하여 놓았다. 「예문답」은 이이(李珥)·성혼(成渾)·정철(鄭澈) 등과 일반적인 의례에 관해 묻고 답한 내용을 적은 것이며, 「가례주설」은 주희(朱熹)의 『가례』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한 조목도 빼놓지 않고 모두 주해를 붙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