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귀정사는 515년(백제 무령왕 15)에 현오국사가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의 이름은 뒷산의 이름을 딴 만행사였다.
그 후 1002년(목종 5) 대은선사(大隱禪師)가 크게 중수하였으며, 1468년(세조 14) 낙은선사(樂隱禪師)가 또 한 번 중수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의 불당은 산을 메웠고, 승려의 수가 200명을 넘었으며, 경내에 법당 · 정루 · 시왕전 · 향적전 · 선당 · 만월당 · 승당 · 상암 · 연화당 · 명월당 · 문수전 · 삼광전 · 대은암 · 남암 · 영당 등이 있었다 한다.
이 같은 시설규모로 보아 만행사의 경역이 상당히 넓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중간에 절이름이 바뀐 것은 고려 말 이성계(李成桂)가 남원지역의 왜구를 격퇴하고 돌아가던 중 만행사에서 3일간 법회도 보면서 당시의 정세를 논하였다고 하여 ‘정사를 보고 돌아갔다’는 뜻의 귀정사로 명칭을 고쳤다고 한다.
그 뒤 귀정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며, 1664년(현종 5) 설제대사(雪霽大師)가 비교적 옛모습으로 복구하였다. 이어 1804년(순조 4) 현일(玄一)이 대웅전 · 시왕전 · 칠성각 · 산신각 · 선당 · 회승각 등 많은 건물을 중건하였으나, 6·25 때 다시 불타 버렸다고 한다.
근래에 와서는 1968년에 정동(瀞東)이 대웅전 · 칠성각 · 승방 등을 중건하였으며, 1990년대 초에는 보광전 오른쪽에 요사를 지었다.
현재 주존 건물은 보광전인데, 보광전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이 협시한 삼신불이 봉안되어 있다. 현재 귀정사 부근에는 서산대사의 제자로서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던 해안(海眼)의 것으로 추정되는 부도가 깨어진 채 있는데, ‘中觀(중관)’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귀정사 주변의 암자터도 발견되었는데, 남암(南庵)터는 귀정사 정면의 개울 앞에 있었다고 하며, 내원암(內院庵)터는 절 밑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있고, 북암(北庵)터는 절 위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