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금주(黔州). 원래 고구려의 잉벌노현(仍伐奴縣)인데, 757년(경덕왕 16) 곡양(穀壤)이라 개칭하고 율진군(栗津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940년(태조 23) 금주로 고치고, 성종 때 단련사(團練使)를 두었으나 목종 때 폐지하였다. 1018년(현종 9)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에 이속시켰다가 1172년(명종 2) 감무(監務)를 두었다.
1414년(태종 14) 이웃 과천(果川)과 합쳐 금과현(衿果縣)이 되기도 하였으나 곧 폐지되고, 양천과 병합하여 금양현(衿陽縣)을 두었으나 또 폐지되고, 1416년 금천현(衿川縣)이 되었다. 1795년(정조 19) 시흥군으로 개칭되었다.
고적으로는 영랑성(永郞城)이 있고, 누정으로 효사정(孝思亭)이 유명하였는데, 그 위치에 관하여 이설이 많다. 지금의 용봉정(龍鳳亭) 자리로 비정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