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방(子方), 호는 정락재(靜樂齋). 아버지는 김양좌(金良佐)이며, 어머니는 금성정씨(錦城丁氏)로 정시열(丁時說)의 딸이다. 대대로 경상북도 의성(義城)에 살았다.
효성이 지극하여 귀먹은 아버지를 섬기는데 늘 곁에서 필담(筆談: 글로써 대화를 나눔)으로써 세상 소식 및 사소한 마을일들을 상세히 알려주었고,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서는 3년 동안 성묘 외에는 문밖을 나서지 않았다.
또, 과거를 보기 위하여 서울에 들를 때는 궁궐을 등지고 앉지 않고, 궁궐 앞을 지날 때에도 반드시 숙연히 국궁(鞠躬: 몸을 굽혀 경의를 표함)을 하였으며, 숙종이 죽은 뒤에는 다섯 달 동안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았다.
평생에 한번도 성낸 적이 없었다 한다. 학문은 유가전래의 경학과 예학에 주력하였는데, 특히 예학은 괄목할만하여 당대 거유(巨儒: 훌륭한 유학자)인 이재(李栽)도 물어볼 정도였다. 호조참판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