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극지(克之), 호는 소포(嘯浦) 또는 귀암(龜菴). 아버지는 증 좌찬성 나사침(羅士忱), 어머니는 파평윤씨(坡平尹氏) 윤언상(尹彦商)의 딸이다.
기골이 장대하고 담력이 컸으며, 29세인 1579년(선조 12)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의금부도사가 되었으나 그것이 마지막 벼슬이었으며, 일생을 야인으로 지냈다. 1589년 정여립 사건이 일어나 유몽정(柳夢井) 등이 처형되고 정개청(鄭介淸) 등이 유배되자 그 여파로 경성(鏡城)에 유배되었다.
때마침 회령 사람 국경인(鞠景仁) 등이 난을 일으켜 임해군(臨海君)·황정욱(黃廷彧)등을 인질로 잡고 왜군과 내통한 사건이 발생하자 북평사(北評事) 정문부(鄭文孚) 등과 의병을 모집, 반란군 토벌을 도왔으며 정유재란(丁酉再亂)이 끝난 뒤에는 고향에서 여생을 보냈다.
의병장 곽재우가 유배되어 영암(靈巖)에 와 있을 때 만난 일이 있었는데, 뒤에 선조가 장수감을 묻자, 곽재우는 김한섭을 천거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아우 나덕헌(羅德憲)은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운 무장이다. 저서로는 『소포유고(嘯浦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