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부천 출신. 1902년부터 1905년까지 광제원(廣濟院)에 근무하였다. 1907년 군산에서 일본군 2명을 살해하였고, 1908년 부안에서 일인이 경영하는 만나상에서 의병자금을 요구하였으나 불응하자 살해하였다.
이 해 10월 김홍일(金洪一)·유창렬(柳彰烈)·고문경(高文敬)·안승팔(安承八)·권두식(權斗植)·최옥일(崔玉一) 등을 규합, 호남 일대에서 기병할 것을 모의하였다.
1910년 유창렬 등과 군자금 모금을 위하여 고창·부안 등지에서 활약 중 일본경찰에 잡혀 1911년 대구공소원에서 징역 7년형을 언도받고 복역 중, 1915년 징역 4년 7개월 3일로 변경되었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