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효재(孝哉), 호는 신촌(新村). 판결사 남세우(南世佑)의 증손이다. 이시(李蒔)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광해군의 난정과 폐모사건을 보고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귀향하였다. 남해준은 영오(穎悟)하고 청렴결백하였으며, 오직 학문에 전념하였는데 특히 진나라와 한나라 때의 고문(古文)을 탐독, 박학하기로 이름이 높았으며, 그 글이 힘이 있고 고법(古法)이 있었다. 저서로 『사례질의(四禮質疑)』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