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5년(세종 27)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현 위치에 창건하였다.
1543년(중종 38)에 중수하고 1564년(명종 19)에 교리(校里)로 이전하였으며, 1655년(효종 6)에 관아(官衙)의 화재로 객사에 봉안되었던 전패(殿牌)가 소실되자 국가에서는 책임을 물어 동복현을 폐현시키고 화순에 편입시켰다. 이에 따라 동복향교도 성현의 위패를 매안(埋安)하고 폐교되었다.
그 뒤 1664년(현종 5)동복현이 복현되어 향교도 복교되었다. 1714년(숙종 40)에 향교의 위치를 현의 남쪽 독상리(獨上里)로 이전하였다가 1756년(영조 32)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1903년과 1935년에 중수하였으며, 6·25전쟁으로 전소된 것을 1959년 정부의 보조와 유림의 노력으로 대성전만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건물 구조는 정면 3칸과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전라남도에서는 유일하게 대성전만 갖추고 있는 향교로서, 1986년에 삼문(三門)이 건립되었다. 향교에는 대성전 외에 동재, 서재 및 내삼문이 있고, 대성전의 바닥은 시멘트 바닥으로 되어 있다. 내삼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솟을대문으로, 막돌초석위에 네모기둥을 세우고 납도리를 걸어 놓은 3량 구조로서 중앙칸 판장문 위로는 홍살을 꽂았다. 동재인 경모재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서재인 양사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가을에 석전(釋奠:석전제, 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는 1985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여러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6·25전쟁 때 전소되어 전적과 현판은 남아 있지 않으며, 최근에는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지방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충효교실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