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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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개념
동양 문화권에서 인간과 세상에 대한 사유를 성찰하는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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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동양 문화권에서 인간과 세상에 대한 사유를 성찰하는 학문.
내용

동양의 전통 속에는 동양이란 단어도 없었고, 철학이란 단어도 없었다. 동양은 서양이란 지역명칭에 상대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철학은 서양의 유서 깊은 학문분야인 필로소피아(philosophia)의 번역어이다.

이 두 단어는 모두 서양문명에 대한 동양적 대응의 산물로서 동아시아의 근대화와 함께 출현한 낯선 것들이다. 이 두 낯선 단어를 한데 합쳐서 만든 동양철학이란 명칭도 그 유래가 오래되지 않았다.

19세기말 일본인들은 동아시아 근대화의 선두주자답게 철학이란 번역어를 처음으로 고안한 다음 여기에 동양이란 말을 덧붙여 동양철학이란 합성어까지 고안했다. 원래 동양의 전통 속에는 동양철학이란 명칭이 없었음은 물론이고, 이 명칭에 어울리는 내용을 가진 학문분야도 없었다. 서양의 전통적인 철학자들이 생각하던 것과 꼭 같은 종류의 철학이 인류 보편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서구 중심적 편견에 불과하다.

동양의 전통 속에는 그런 종류의 철학은 있은 적이 없다. 동양철학이란 명칭과 그 내용이 모두 서양철학에 대한 동양적 대응의 산물로서 출현한 것이다. 서양철학의 도입이 없었다면 동양철학은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동양철학의 역사는 동아시아의 근대화 혹은 서구화와 그 시작을 함께 한다.

이로 인해 동양철학은 처음부터 서양철학을 준거의 기준으로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세기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동양철학 연구는 중국을 위시한 동아시아 삼국의 오랜 문화적 유산 가운데 서양철학과 비슷한 내용을 가진 텍스트를 선별해 다시 읽고, 거기에 쓰여진 사상적 내용을 서양철학과 비슷하게 재정리하는 작업으로 일관해왔다.

존재물음을 중심으로 하는 서양철학의 전통적인 문제의식을 수입하여 관념론과 실재론, 유심론과 유물론 따위의 대립구도를 통해 동양의 옛 사상을 재평가하기도 했고, 논리학·형이상학·인식론·윤리학·미학 등 서양철학의 분류방식에 따라 동양의 옛 사상을 재분류해서 분야별로 깊이 있게 연구하기도 했다.

또한 철학이 고대에서 중세로, 중세에서 근대로 직선적으로 발전한다고 보는 서양철학사의 서술방식을 도입하여 동양의 사상적 변화 양상을 방대한 규모의 철학사로 재구성하기도 했다. 국가별로 철학사를 재구성하여 중국철학사, 일본철학사, 한국철학사를 쓰기도 했고, 심지어는 시대별로 세분해서 쓰여진 철학사도 출현했다.

그리하여 동양철학은 주로 한문으로 쓰여진 동양의 전통적인 사상을 다루면서도 동양의 전통적인 사상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 새로움의 근거는 서양철학에서 유래한 다양한 시각과 방법에 있었다.

동양철학은 처음부터 비교철학으로 시작했다. 동양철학은 서세동점(西勢東漸)으로 인한 동서교섭의 산물이었던 만큼 이제는 설령 서양철학과는 다른 식으로 혹은 서양철학을 부정하는 식으로 동양철학을 한다 해도 이미 비교철학의 운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게 되었다.

어떤 종류의 동양철학 연구성과이건 공통적인 특징이 하나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체계적인 지식의 건립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서양의 학문적 전통에서는 체계적인 지식이야말로 학문이 학문일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으로 요구된다.

이제 동양의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윤리학을 쓰건 철학사를 쓰건 객관적 근거에 따라 엄밀하게 논증되고 일관성 있게 정리된 지식의 형태로 그 결과가 산출되어야 한다는 데에 대해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유교, 불교, 도교를 막론하고 경학(經學)이 중심이었던 동양의 학문적 전통에서는 체계적인 지식이 부정되진 않았다 하더라도 그렇게 강조되진 않았다. 예를 들면,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록인 ≪논어≫는 체계적인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철학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을 위한 지침서였다.

거기에는 형이상학이나 윤리학에 해당할 만한 언급도 있고 중국철학사에 해당할 만한 언급도 있긴 하나 거의 모든 언급이 단편으로 그칠 뿐 일관된 체계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후대에 많은 학자들이 ≪논어≫에 대해 주석을 썼지만 주석도 체계적인 지식을 구성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동양철학은 유교의 경서와 같은 텍스트의 비체계적인 가르침을 체계적인 지식으로 전환하는 작업에 매달려 왔다. 경서의 권위를 믿고 경서의 가르침대로 살기를 요구하던 동양의 경학적 전통은 동양철학의 등장으로 인해 체계적인 지식을 구성하기 위한 객관적인 연구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요컨대 20세기 이후 동양철학 연구는 경학의 철학화를 초래했다. 이 과정에서 잃은 것도 있고 얻은 것도 있다. 잃은 것을 꼽으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동양의 전통적 텍스트들이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지침서로서 읽혀지기보다는 철학적 이론 구성이나 철학사 구성을 위한 연구의 대상으로 읽혀지게 되었다.

이제 유교의 텍스트를 읽더라도 반드시 유학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불교의 텍스트를 읽더라도 반드시 깨달은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 서양철학의 기준에 따라 합리적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텍스트의 내용들이 연구의 대상에서 소외되었다. 합리성 혹은 체계성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이며 동양의 전통적 텍스트에도 그 나름의 함리성 혹은 체계성이 있다는 사실이 자주 망각되었다.

예를 들면, 음양오행론에 기반을 둔 한의학, 명리학(命理學), 풍수지리학, 천문학 등이 이른바 사이비과학으로 치부되어 적극적인 관심을 끌지 못했고, 심신의 수련 방법을 제시하는 공부론이라든가 복잡한 인간관계와 각종 의례적 행위를 세밀하게 규명하는 예학(禮學)도 체계적인 지식으로 재구성되기 어려운 탓에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처럼 동양의 전통적 텍스트들이 구체적 삶과의 실천적 연관성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그 오묘한 내용의 상당 부분이 소외되었다는 것은 동양철학을 연구한다 해도 동양의 전통적 정신과 학문이 부활한다는 보장이 없음을 의미한다. 오히려 연구하면 할수록 동양의 전통으로부터 멀어져 갈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학의 철학화를 통해 얻은 것도 적지 않다. 얻은 것은 실은 잃은 것과 동전의 앞뒷면처럼 불가분한 관계에 있다.

첫째, 동양철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등장과 더불어 경서라고 하는 텍스트의 권위에 대한 맹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비판적으로 사유할 수 있게 되었다. 20세기 이후 경서에 대한 엄밀한 문헌학적 비판과 아울러 그 의미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 제한 없이 행해졌다.

이것은 경서의 권위가 지배하는 전통적인 경학이 종식되었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경서의 권위가 부재하는 전대미문의 새로운 경학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동양문화사에서 서양철학의 도입으로 인한 동양철학의 성립은 아마도 인도불교의 도입 이래 최대의 문화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둘째, 경서를 위시한 전통적 텍스트들이 체계적인 지식으로 재구성되는 가운데 일부 오묘한 것들이 망각되는 한편 예전에 주목받지 못했던 것들이 새로 각광을 받게 되는가 하면 모호한 것들이 분명하게 되고 내밀한 것들이 공개화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로써 동양의 전통적인 정신과 학문은 근대화되고 서구화된 오늘의 세계 속에서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다. 동양의 전통적인 정신과 학문이 동양의 과거라는 특수성에 머물지 않고 세계사적 보편성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서구적 합리성과 체계성의 기준을 도외시할 수 없다.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다 짊어진 채 미래로 나아갈 수는 없다. 동양철학은 19세기말 동양문화와 서양문화의 교차로에서 탄생하여 동양의 문화적 유산 가운데 상당 부분을 희생하면서 서양철학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받아들였다.

오늘날 서양철학에 전혀 무지한 채 아주 고루하게 동양철학을 한다 하더라도 이미 서양철학의 새로움과 무관할 수는 없다. 이것은 동양의 전통적인 정신과 학문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불행일 수 있지만 동양문화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다행일 수 있다.

그러나 지난 세기의 동양철학 연구성과가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서양철학은 동양철학을 가능케 하고 있지만 동시에 동양철학의 가능성에 제한을 가하고 있다.

동양철학이 21세기에도 인간의 삶에 유익한 학문으로 인정받으려면 먼저 이 제한을 돌파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서양철학이 유일한 철학이 아님을 자각하면서 서양철학을 상대화시킬 줄 아는 폭넓은 안목의 획득이 필요하다. 그래야 서구적 기준에 따라 체계적인 지식을 생산하느라 잃어버린 동양문화의 실천적 연관성과 그 고유한 논리를 변화된 시대에 맞게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단지 동양의 문화적 유산으로부터 미래의 자원을 재개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폐증에 빠져 있는 서양문화를 다른 문화에로 개방시키는 계기도 마련해줄 것이다.

21세기의 동양철학은 동양문화와 서양문화 사이에 진정한 대화의 길을 열어주면서 동양문화의 한계와 서양문화의 한계를 넘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새롭고 깊이 있는 통찰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中國哲學史』上·下(풍우란, 박성규 역, 까치, 1999)
『중국의 과학과 문명』 전3권 (니담, 조셉, 김석호 등역, 을유문화사, 1986)
『원효에서 다산까지』(김형효, 청계,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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