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2책. 필사본. 1911년 9대손 두화(斗和)와 10대손 상서(尙書) 등이 유고를 모아 편집하였다. 권두에 김학진(金鶴鎭)의 서문과 권말에 두화의 발문이 있다. 규장각 도서,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각 권별로 목록이 있고, 권1은 시 125수, 권2는 소(疏) 6편, 책 1편, 서(書) 3편, 논(論) 1편, 표(表) 1편, 부(賦) 3편, 행장 6편, 제문 2편, 묘지 1편, 권3은 조천일기(朝天日記), 권4는 부록으로 유지(諭旨) 23편, 행장·시장(諡狀)·묘지명·명신열전초(名臣列傳抄)·제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그가 관직 생활을 하는 동안 각 지방을 다니면서 느낀 여정을 읊은 것이 대부분으로, 표현이 온아하며 낭만적인 정취가 담겨 있다. 「야유서호증금녀(夜遊西湖贈琴女)」는 풍류와 서정이 시격을 훼손하지 않고 풍경에 잘 조화시켜 표현한 작품이다. 또한 만시(輓詩)가 여러 수 있는데, 이 중에는 신흠(申欽)에 대한 것이 들어 있다.
소에는 평안감사의 사직을 청원하는 상소가 4편이 있다. 서(書)에는 명나라의 무장 모문룡(毛文龍)에게 보낸 서찰 2편이 있다. 1621년(광해군 13) 모문룡이 청나라군사에 밀려 요양(遼陽)을 빼앗기고 의주(義州)로 도피해 요동을 다시 탈환한다는 명목으로 조선에 군량과 무기의 공급을 강요했는데, 이와 관련해 왕명에 따라 군량을 운반, 공급하는 문제로 보낸 내용이다. 당시의 미묘하였던 대명·대청 관계를 연구하는 데 참고자료가 된다.
「조천일기」는 1617년 4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약 1년간 동지상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일을 적은 것이다. 부록의 유지는 그가 평안도관찰사로 있을 때 받은 교서 등인데, 1623년(인조 1) 모문룡의 접반사(接伴使)에서 평안도관찰사에 이수(移授)를 명한 교서는 당대의 문장대가로 꼽히는 이식(李植)이 지은 것으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