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지국 ()

고대사
지명
삼한시대 마한(馬韓) 54개 소국(小國) 중의 하나.
이칭
이칭
월지국(月支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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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한시대 마한(馬韓) 54개 소국(小國) 중의 하나.
개설

『삼국지(三國志)』위지 동이전(魏志 東夷傳)에는 ‘월지국(月支國)’으로 기록되어 있다. 목지국(目支國)은 초기 철기시대 이래 충청남도와 전라도 지역에서 형성, 발전되어온 토착 정치 집단의 하나로, 백제국(伯濟國)이 마한의 주도 세력으로 성장하기 전까지 마한 소국 연맹체(小國聯盟體)의 중심 세력이었다.

자연환경

목지국의 위치는 인천, 한강 유역의 위례성(慰禮城), 충청남도 직산(稷山), 예산(禮山), 아산만 일대 등지에 비정되기도 하고,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서 청동기 유물이 비교적 풍부하게 발견되는 전북특별자치도 익산(益山), 금강 유역, 나주를 중심으로 한 영산강(榮山江) 유역 등지에 비정되기도 한다. 또한 사료상 목지국이 웅천(熊川) 이남에 위치한다는 점, 그리고 대체로 북에서 남으로 나열된 마한 50여국 중에서 백제국의 여섯 번째에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그 위치가 아산만 이남으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이는 고조선 준왕(準王)의 남주(南走) 기록이나 청동기 유물 및 고분군의 분포 상태 등을 서로 다른 기준으로 상호 결합하여 제시된 견해들이다.

형성 및 변천

목지국의 신지(臣智: 삼한 소국의 정치적 지배자)인 진왕(辰王)은 마한 소국 연맹체의 맹주로서 진한(辰韓) · 변한(弁韓) 소국의 일부에 대하여 지배권을 행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진왕은 스스로의 의사에 의해 마한 소국 연맹체의 연맹장이 될 수는 없는, 정치 권력이 아직 미약한 지배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왕은 삼한 소국에 대한 통제권을 기반으로 한군현(漢郡縣)과의 교섭을 주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진왕의 역할은 마한 소국들에 대해 상징적 대표권과 실질적 통제권 양자 모두를 지닌 것이었다. 이로 보아 진왕의 성격을 연맹체적인 지배권을 동반한 교섭 주도권, 조정권, 상업 · 무역을 둘러싼 진왕국연합체(辰王國聯合體)의 주도권, 교역주도권 등으로 파악한다.

목지국의 존속 시기 및 진왕의 지배 영역과 지배 성격에 대해서도 해석이 다양하다. 목지국진왕은 삼한 전체를 통솔한 지배자라는 해석과 부족 연맹장(部族聯盟長)으로서 상징적인 의미가 강한 존재라는 해석, 3세기경의 백제고이왕(古爾王)과 동일 인물이라는 주장들이 그것이다.

목지국 왕의 진한 · 변한 소국 지배에 관한 기록에 대해서도, 이를 중국 군현(郡縣)에 근접한 한(韓)소국과 멀리 떨어진 소국 사이에 형성된 공납 관계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중국 군현과의 교역 과정에서 경상도 방면의 일부 정치 집단들에 대하여 확립된, 마한 소국의 우월한 위치가 반영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처럼 목지국과 관련해서는 진왕 문제와 함께 그 중심 연대, 지배 영역, 지배 성격 등을 둘러싸고 아직 많은 쟁점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
「1∼3세기 진왕(辰王)의 성격 변화와 삼한 소국(三韓 小國)의 대외교섭」(이부오, 『신라사학보(新羅史學報)』창간호, 2004)
『삼한(三韓)의 국(國)에 대한 연구(硏究)』(권오영,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6)
『한국 고대(韓國 古代)의 생산과 교역』(이현혜, 일조각(一潮閣), 1998)
「고고학적 측면(考古學的 側面)에서 본 마한(馬韓)」(최몽룡, 『마한백제문화연구(馬韓百濟文化硏究)』9, 1986)
「목지국고(目支國攷)」(김정배, 『천관우선생환력기념한국사학논총(千寬宇先生還曆紀念韓國史學論叢)』, 1985)
『삼한사회형성과정연구(三韓社會形成過程硏究)』(이현혜, 일조각(一潮閣), 1984)
「준왕(準王) 및 진국(辰國)과 삼한정통론(三韓正統論)의 제문제(諸問題)」(김정배, 『한국사연구(韓國史硏究)』13, 1976)
「목지국고(目支國考)」(천관우, 『한국사연구(韓國史硏究)』24, 1979)
『한국고대사연구(韓國古代史硏究)』(이병도, 박영사(博英社), 1976)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신채호, 1931)
『古代東北アジア史硏究』(三上次男, 吉川弘文館,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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