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3년(중종 18)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이후의 향교 연혁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의 위패가, 동무·서무에는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건축형태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이고, 전체배치는 동향(東向)이다. 목천향교는 조선 전기에 세운 것으로 보이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고, 전란 후에 다시 세운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수리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다. 대성전은 임진왜란 직후에, 명륜당은 1642년에 건축되었다. 향교 내에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3칸, 명륜당 5칸, 동·서재 각각 3칸, 동·서무 각각 3칸, 행랑 3칸, 내삼문이 2칸이 있다.
조선시대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정원 30인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1997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