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해주 출신.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뒤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단에 입단하였다.
1920년 군자금 모금과 친일파 숙청의 사명을 띠고 국내에 잠입하여, 평안북도 박천에서 동지를 포섭한 뒤 진남포로 향하던 중, 평안남도 대동군 용산면에서 불심검문을 하던 일본경찰을 권총으로 사살하고 황해도 은율로 피신하였다.
1920년 8월 은율군수 최병혁(崔炳赫)과 참사 고학륜(高學倫)이 독립운동을 방해하는 악질 친일파임을 알아내고 이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단원들과 같이 출동하였다. 최병혁을 처단하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고학륜은 도주하여 실패하였다.
9월 10일 신천(信川)에 은신중 일본경찰대의 포위 습격을 받고 치열한 교전중 중과부적으로 잡혔다. 1921년 평양복심법원에서 사형이 언도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