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국 ()

근대사
인물
대한제국기 때, 이석용 의진에서 보급책으로 활동하였으며, 국권 피탈 이후 진전면사무소를 습격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의병 · 독립운동가.
이칭
이칭
박보국(朴輔局), 박금석(朴金石)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6년(고종 13)
사망 연도
1951년
출생지
전라북도 임실
정의
대한제국기 때, 이석용 의진에서 보급책으로 활동하였으며, 국권 피탈 이후 진전면사무소를 습격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의병 · 독립운동가.
개설

이명은 박보국(朴輔局)·박금석(朴金石).  전라북도 임실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체결되고, 1907년 정미칠조약과 군대해산이 강행되는 등 일제의 국권침탈이 심화되자, 1907년 9월  전라북도 진안 마이산에서 동지 수십명을 규합하여 “대한제국 만세”를 삼창한 뒤 이석용(李錫庸) 의진에 들어가 보급책으로 활동하였다.

그 뒤 군자금 모금에 주력하여 1912년 10월 이석용의 지시로 김필주(金必珠)·김운서(金雲瑞) 등과 함께  장수군 내진전면의 내외진전면사무소를 습격하여 세금 133원과 면비 50원, 개인 소지금 28원 및 손금고 2개를 탈취하였다.

12월중 밤에는 일본경찰의 앞잡이로 학교를 운영하던  임실군 강정수(姜正秀)의 집으로 들어가 총기로 위협한 뒤 안경 및 군자금을 탈취하였다.

1914년 일본경찰에 잡혀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언도받고, 이에 불복하여 대구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기각되어 원심대로 확정되었다. 복역 중 징역 7년 6개월로 변경되었고, 1915년에는 징역 5년 7개월로 감형되었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대구공소원판결문(大邱控訴院判決文)」
집필자
박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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