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양(咸陽). 호는 금은(琴隱). 아버지는 중랑장(中郞將) 박윤후(朴允厚)이다.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고려가 망하자 문소현(聞韶縣: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 봉두산(鳳頭山)에 은거하여 세상에서는 28은의 한 사람으로 칭하였다.
태조가 여러 차례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다가 남쪽지방에 왜구가 쳐들어왔을 때 조정에서 박성양을 원수(元帥)로 천거하자 명을 받고 군사를 이끌고 가서 대승을 거두었다.
그 뒤 보덕(輔德)·좌장사(左長史)·우장사(右長史) 등에 임명되었고, 태종이 즉위하자 전라도안렴사·함경도북영병마사를 역임하였다. 1419년(세종 1) 왜구들이 다시 출몰하자 우군절제사(右軍節制使)가 되어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공으로 동지총제(同知摠制)에 승진되었고, 그 뒤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이조참판과 도총부부총관(都摠府副摠管)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정헌(正憲)이며, 명곡서원(明谷書院)에 제향되었다. 실기로 『금은실기(琴隱實紀)』 1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