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은 박인화(朴仁花). 경상북도 안동 출신.
유학을 공부하던 처사(處士)로서 1905년 11월에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사방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 300여 명을 모아 의병장에 추대되었다.
영양·진보·안동 등지에서 일본경찰 10여 명을 사살하고 일본경찰의 분파소를 소각하는 성과를 올리다가, 1908년 5월 4일 안동에서 대구경찰서 무장대와 교전하던 중 잡혀 총살, 순국하였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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