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사당을 비롯해 솟을삼문으로 박팽년과 둘째 아들 박순, 그의 유복자 박일산의 정려가 걸려있는 충신문이 있다. 1978년 10월 27일에 충청북도 지방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박팽년(朴彭年, 1417~1456)의 본관은 순천(順川)이고, 자는 인수(仁叟)이며, 호는 취금헌(醉琴軒)이다. 세종대의 집현전 학사였으며 단종 복위 운동에 참여하다 죽은 사육신 가운데에 한 사람이다. 시호는 충정(忠正)으로 숙종 대에 내려졌고 1758년(영조 34) 이조판서로 추증(追贈)되었다.
박팽년의 사당은 전면 3칸과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목조 기와집이다. 1775년(영조 51) 충신문(忠臣門)이 정려(旌閭)될 때에 함께 세웠으며, 입구에는 일각대문(一角大門)을 두고 담장을 둘렀다. 현재 건물은 1968년에 충주시에서 복원할 것이다.
사당 입구에는 솟을 삼문 형식의 충신문이 있다. 중앙에는 박팽년의 정려가 걸려있고, 왼쪽에는 둘째 아들 박순(朴珣), 오른쪽에는 박순의 유복자 박일산(朴一珊)의 정려가 걸려있다. 1831년(순조 31)에 정려된 것이다. 1977년에 현재 위치에서 20m 떨어진 지점에 있던 것을 옮겨 복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