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실학의 선구자인 유형원이 낙향 이후, 평생 연구생활에 몰두하며 살던 곳으로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에 위치한다. 우동리는 반계 유형원이 살던 곳이라 하여 일명 ‘반계 마을’이라고 불렀고 예전에는 ‘우반동(愚磻洞)’이라고도 했다.
유적지 일대에는 반계정(磻溪亭), 반계서당(磻溪書堂)이라는 편액이 걸린 건물이 세워져 있는데, 이곳에 거주하며 평생 학문 연구에 힘을 쏟아 『반계수록』를 저술하였다. 한편 우반리 마을에는 유형원이 팠다고 전해오는 우물이 최근에 복원되었고 유적비도 건립되었다. 1963년 1월 21일에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유형원(柳馨遠)의 본관은 문화이고, 자는 덕부(德夫)이다. 1622년(광해군 14)에 서울 정릉(貞陵)에서 태어났다. 1653년(효종 4)에 조부 유성민(柳成民)을 따라 부안현 남쪽 기슭 우반동으로 옮기고 이곳의 지명을 따서 자신의 아호를 반계(磻溪)라 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이상향을 건설하고자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고, 또 몸소 연구한 것을 실생활에 실천해 보았다. 그의 사상과 이념, 이상 국가 건설을 위한 구상 등은 우리나라 실학사에 길이 남을 『반계수록(磻溪隧錄)』 26권에 그대로 실려있다. 『반계수록』은 1770년(영조 46) 왕의 특명에 의해 간행되어 오늘날에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는 조선 실학파(實學派)의 조종(祖宗)을 이루었다. 조선의 실학이 이곳 전라도에서 싹트게 된 것도 반계가 이곳에서 많은 후진과 주민들에게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현재 이곳에 그가 거주한 건물은 없어졌고 기와편과 초석만 발견된다. 1974년 이곳의 군민과 정부의 지원으로 ‘반계 유형원선생 유적비(磻溪柳馨遠先生遺蹟碑)'가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