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자이자 청백리 백인걸과 부인 순흥안씨와의 합장묘로,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에 위치한다. 면적 300㎡로 조성된 묘소 뒤에는 할아버지 백사수(白思粹)의 묘소가 있다. 묘소 입구에는 신도비와 비각이 있고, 무덤 앞에는 상석, 향로석과 함께 동자석, 망주석, 문인석 등이 한 쌍씩 있으며, 좌측에 좌대가 있는 묘비가 있다. 1981년 7월 16일에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백인걸(白仁傑, 1497~1579)은 본관이 수원(水原), 자는 사위(士偉), 호는 휴암(休菴)이다. 조광조(趙光祖)와 김안국(金安國)의 문인이며 이이(李珥)·성혼(成渾)과 교분이 두터웠다. 기묘사화(己卯士禍) 이후 명종대까지 훈구파의 발호에 맞서 사림파를 보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1545년(인종 1) 을사사화(乙巳士禍) 때 일신을 돌보지 않고 윤원형(尹元衡)의 음모에 대항한 것이 높이 평가된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건너편 야산에 있는데 봉분은 근래에 새로 단장한 호석으로 둘러 비교적 큰 규모로 조성하였다. 봉분 왼쪽으로는 묘비가 세워져 있고 장대석(長臺石)으로 계절(階節: 무덤 앞에 평평하게 만들어 놓은 땅)을 쌓았으며 그 앞에는 상석(床石)과 향로석(香爐石)이 있다. 상석 앞에는 장명등(長明燈)이 설치되어 있고, 그 좌우측으로 동자상·망주석·문인석이 각각 1쌍씩 배치되어 있다.
묘소 아래쪽으로 비각(碑閣) 속에 화강암으로 된 신도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수(이首), 비신(碑身), 기대(基臺), 대좌(臺座)의 4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규모는 총높이 395㎝, 너비 90㎝, 두께 30㎝이다.
비문은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송준길(宋浚吉)이 썼으며, 전액은 김수항(金壽恒)이 썼다. 한편 이웃 마을에는 주민들이 건립한 선정비가 있는데, 앞면에 '성주(城主) 백인걸 선정비(善政碑)'라고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