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고구려의 주부토군(主夫吐郡)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장제(長堤)로 고쳤고, 고려 초에는 수주(樹州)라 하였다. 995년(성종 14) 단련사(團練使)를 두었다가 뒤에 폐하였으며, 1150년(의종 4)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를 두었다가 1215년(고종 2) 계양도호부(桂陽都護府)로 바꾸었다.
1308년(충렬왕 34) 길주목(吉州牧)으로 승격시켰다가 1310년(충선왕 2) 부평부(富平府)로 강등시켰으며, 1413년(태종 13) 부평도호부가 되었다. 1895년(고종 32) 인천부(仁川府)의 관할에 속했다가 다음해 경기도의 부평군이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부천군(富川郡)에 편입되었다가 지금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동과 경기도 부천시의 일부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부평의 영역이 인천과 김포 사이에 있어 해안지방에 면해 있었다. 진산(鎭山)인 안남산(安南山)에는 옛 성이 있었고, 해안지방의 축관봉수(杻串烽燧)는 김포의 백석산봉수(白石山烽燧)를 통해 서울과 연결되었다. 금륜역(金輪驛)은 인천ㆍ김포ㆍ양천 등지와 연결되는 도로상에 발달하였다. 당시에는 강화도와 함께 서울의 서쪽을 방어하는 군사적 요충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