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때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처음에는 당시 비안현(比安縣)에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그 뒤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898년 ·1924년 ·1935년에 각각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8칸의 대성전, 3칸의 동무(東廡), 4칸의 서무(西廡), 6칸의 명륜당, 3문(三門) 등이 있으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현재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두어 명이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