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일명 성재평(成載平). 충청남도 예산 출신.
1904년 2월 한일의정서가 발표되자 예산·홍성·보령 등지를 전전하며 항일투쟁을 위한 동지규합과 여론조성에 힘썼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체결되자, 1906년 4월 민종식(閔宗植)이 홍산(鴻山) 지치(芝峙)에서 의거한 소식을 듣고 그 휘하에 들어가 박제현(朴齊賢)과 함께 운량관(運糧官)에 임명되어 홍주입성전에 참전하였다.
그 뒤 홍주성을 빼앗긴 관군과 일본군은 보병·기병 등 많은 병력으로 성을 공격하였다. 며칠간 성을 사수하였으나, 4월 9일 새벽 적의 강력한 화약 사용으로 성이 함락되었다.
이 때 주장(主將)인 민종식은 피신하였으나, 성재한은 전태진(田泰鎭)·서기환(徐基煥)·전경호(田慶浩)·유준근(柳濬根)과 함께 성을 사수할 것을 결의하고 일본군의 총탄 앞에 육탄으로 대항하다가 전사하고 말았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