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남원시, 서북쪽은 노령산맥의 주능선을 경계로 정읍시, 남쪽은 전라남도 장성군 · 담양군 · 곡성군, 북쪽은 임실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6°52′∼127°18′, 북위 35°18′∼35°33′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495.96㎢이고, 인구는 3만 248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0개 면, 305개 행정리(131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에 있다.
북서부는 노령산맥 말단부의 동사면에 위치하여 험한 산지를 이루고, 동남부는 섬진강의 지류 주변에 분지가 발달하여 서로 대조되는 지형을 이룬다. 북서지역의 기반암은 중생대 백악기(白堊紀)의 진안층군에 속하는 퇴적암류와 응회암이다. 그리고 동남지역의 분지는 편마상화강암(片麻狀花岡岩)이다.
북부와 북서부의 정읍시 · 임실군과 인접한 지역은 노령산맥의 주능선이 지나가 회문산(回文山) · 장군봉(將軍峰, 780m) · 여분산(如紛山, 774m) · 깃대봉(644m) · 국사봉(國師峰, 655m) · 내장산(內藏山, 763m) · 백방산(栢芳山, 660m) 등의 비교적 높은 산들이 있다.
서부의 전라남도 장성군 · 담양군과의 인접지역에도 추월산(731m) 등의 산들이 솟아 있으며, 북서부의 쌍치면 · 복흥면에는 200∼350m의 고원이 발달해 있다. 진안고원과 연속되는 이 두 고원은 백악기의 능주층군이 백악기 말의 화산암류의 분출로 경화(硬化)되고 주변의 화강암류가 분해침식되어 이뤄진 것이다.
북서부에서부터 광덕산(廣德山, 584m) · 무이산(武夷山, 558m) 등 500∼600m의 산지가 연속되다가 남원시와 인접한 동남부에서 섬진강의 지류 주변에 100∼200m의 분지가 발달해 있다. 순창분지는 지질 구조의 차이로 인해 발달한 침식분지로, 기반암이 분지상은 편마상화강암류인 데 비해 분지벽은 결정편암 · 규암 등의 퇴적암류로 이뤄져 있다.
섬진강은 군 동부에서 흐르며 주변에 비교적 넓은 충적평야를 이룬다. 임실군 오수면 일대에서 흘러온 오수천은 적성면에서 섬진강과 합류하면서 강폭이 크게 넓어지는데, 이곳에서는 적성강(赤城江)으로도 불린다.
팔덕면 서쪽에 있는 광덕산과 산성산(山城山, 573m)에서 발원한 경천(鏡川)에는 인계면 북쪽에 있는 갈재[盧嶺]에서 발원한 양지천(陽芝川)과 금과면에서 발원한 지류들이 순창읍에서 합류하여 비교적 넓은 충적지를 이루며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그 밖에 서부에서 추령천(秋嶺川)이 복흥면 · 쌍치면을 지나 정읍시 산내면에서 갈담저수지로 흘러든다. 북부에서는 구림천이 구림면 일대를 지나 임실군에서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연평균기온 13℃, 1월 평균기온 -2.5℃, 8월 평균기온 26℃이다. 연강수량은 1,300㎜로 남부내륙형 기후구에 속한다. 그러나 북서부의 산지는 부근의 다른 지역보다 높아 고랭지대에 속하여 여름에는 비교적 서늘하고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린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유물 · 유적은 아직 발견된 바 없으나, 부족국가시대의 유적인 지석묘가 순창읍 신남리, 인계면 중산리 등 여러 곳에 산재하는 점으로 미루어 늦어도 청동기 시대부터는 이 지방에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영토로 오산(烏山) 또는 옥천(玉川)이라 불렀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로 도실군(道實郡)이 되었다. 백제가 망하자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으며, 757년(경덕왕 16) 순화군(淳化郡)으로 개칭되어 적성현(赤城縣)과 구고군(九皐郡)을 관할하였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많은 사찰들이 세워졌다. 그중 백제 때인 634년(무왕 35) 숭제법사(崇濟法師)가 창건한 구암사(龜巖寺)와 통일신라시대인 887년(진성여왕 1) 도선국사(道先國師)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강천사(剛泉寺) 등이 대표적인 사찰이다.
고려가 건국된 뒤 940년(태조 23) 현재의 지명인 순창(淳昌, 일명 淳州)으로 개칭되었다. 1018년(현종 9)에는 현으로 강등되어 남원부의 속현이 되었다. 1175년(명종 5) 감무(監務)가 파견되었으며, 1314년(충숙왕 1) 당시 국통(國統)인 정오선사(丁午禪師)의 고향이라 하여 다시 군으로 승격되었다.
이 시대의 인물로는 1271년(원종 12) 세자 심(諶: 뒤의 충렬왕)이 몽고에 인질로 갔을 때 그를 배종하여 공신이 된 설공검(薛公儉)이 있다. 그리고 이성계(李成桂)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자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하여 금굴리(金掘里)에서 은거한 조원길(趙元吉) 등이 있다.
1409년(태종 9) 순창군은 18방(坊)을 관할했으며, 이때부터 대체로 현재와 같은 행정구역을 유지해 왔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당시 순창군의 호수는 317호, 인구는 1,092명이었다. 임진왜란 때는 김치세(金致世)가 이 지방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병을 무찌른 공으로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 그리고 정유재란 때는 조유(趙유)는 정읍에서 갈재로 넘어가는 왜병을 맞아 싸우다 전사하였다.
병자호란 때는 이 고장 출신인 선무랑(宣武郎) 양여용(楊汝槦)이 정시직(鄭時稷)과 의병을 일으켜 경기도의 남한산성으로 가던 중 강화가 성립되었다는 비보를 듣고 부득이 해산하였다.
조선시대의 학자로는 실학자로서 『강계지』를 저술한 신경준(申景濬)과 성리학자로서 주리설(主理說)을 주장한 기정진(奇正鎭) 등이 있다.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이 곳에서도 순창접주 우동원(禹棟源)이 동학군을 인솔하여 황토현전투(黃土峴戰鬪)에서 관군을 격파하였다. 1897년 방을 면으로 개편하여 집강(執綱)을 두고 18면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4개 면을 관할하였다.
1917년에는 좌부면과 우부면을 순창면으로, 1919년에는 금동면과 목과면을 금과면으로, 1935년에는 구암면과 무림면을 구림면으로 각각 병합하여 11개 면을 관할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 지방에서도 4월 11일을 기하여 많은 사람이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근대의 인물로는 한말 대유학자로서,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제자인 임병찬(林秉瓚) 등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순창객사에 총본부를 두고 항일의병활동을 전개한 최익현(崔益鉉)이 있다.
그 밖에도 의병장 양춘영(楊春泳) · 국동완(鞠東完)과, 창씨개명에 반대하여 투신자살한 설진영(薛鎭永)이 있다. 또한 상해 임시정부의 통신책임자로 활약하다가 서울에 잠입하여 독립군자금 조달에 힘쓰는 등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김일두(金一斗) 등이 있다.
1950년 공산군의 남침으로 각급 관청과 교회 · 주택 등이 파괴되었다. 이 때 순창농림중학교 학생들이 대거 학도의용군에 가담하여 포항전투에서 158명이 전사하였다. 또한 9·28수복 후 이 지방 사람들은 구림면 ‘회문산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하여 향토 수호를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그 뒤 전후복구사업과 1970년대 새마을사업 등으로 오늘날의 발전을 가져왔다. 1979년 5월 1일 순창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1987년 1월 1일 남원군 대강면 입암리 일부가 유등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1월 15일에는 쌍치면 적곡리가 종곡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순창읍 신남리의 고인돌군을 비롯하여 인계면 중산리 · 도룡리, 동계면 구미리 · 주월리, 적성면 내월리 · 고원리, 금과면 수양리, 팔덕면 구룡리, 쌍치면 둔전리, 구림면 운남리 · 금천리 등 군 내 20여 곳에 고인돌군이 있다.
어느 시대에 만들어진 고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도굴했다는 순창읍 신남리고분을 비롯하여 백산리고분, 인계면 중산리 · 갑동리고분, 적성면 운림리고분 등이 있으나 대부분 도굴된 상태이다.
성지로는 『동국여지승람』에 군창(軍倉)이 성 내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순창읍 백산리의 홀어머니산성, 동계면 신흥리의 합미성, 유등면의 오교리성지, 풍산면 대가리의 옥출산성지(玉出山城址), 구림면 율북리의 여현성지(廬峴城址) 등이 있다. 홀어머니산성, 합미성은 1975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가마터로는 옛날 기와를 굽던 구림면 안정리의 와요(瓦窯)와 쌍치면 둔전리장군봉 아래의 분청사기요지, 백방산 아래의 분청사기요지, 구림면 금창리의 가마터 등이 있다.
사찰로는 팔덕면 청계리에 887년(진성여왕 1)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강천사가 있다. 또한 구림면 안정리에 백제 무왕 때 창건하고 이성계가 임금이 되기 전에 무학대사가 중창하였으며, 6·25동란으로 소실되어 1954년에 중건된 만일사(萬日寺)가 있다. 그리고 복흥면 봉덕리에 634년(백제 무왕 35)숭제법사가 창건했고, 조선 영조 때 화엄종주 설파(雪坡)가 주거하며 화엄종파의 법통을 계승한 구암사(龜巖寺)가 있다.
절터로는 백제시대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고 전해지는 개심사지(開心寺址)를 비롯하여, 동계면 수장리에 난계사지(蘭溪寺址), 내령리에 갈궁사지(葛宮寺址) · 취암사지(鷲巖寺址), 적성면 석산리에 불암사지(佛巖寺址), 구림면 운남리에 여운사지(如雲寺址) · 쌍계사지(雙溪寺址), 순창읍에 남계리사지(南溪里寺址) 등이 있다.
불교 유산으로는 인계면의 세룡리 마애삼존불상, 적성면 괴정리미륵석불과 순창읍 순화리삼층석탑이 있다. 그리고 팔덕면 청계리에 강천사오층다보탑 · 강천사석탑이 있다. 순화리삼층석탑은 1973년, 강천사석탑은 1979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관아로는 1974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순창읍 순화리에 순창객사가 있다. 유교 유산으로는 순창읍 교성리에 순창향교와 1975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순창향교대성전이 있다.
서원으로는 순창읍 가남리에 남산서원(南山書院)이 있었으며, 적성면 괴정리에 화산서원(花山書院), 팔덕면 청계리에 무이서원(武夷書院), 쌍치면 둔전리에 어암서원(魚巖書院), 적성면 지북리에 지계서원(芝溪書院)이 있었다. 김인후(金麟厚)가 후배 양성에 힘썼던 서당인 훈몽재도 지금은 현존하지 않는다. 사우로는 동계면 신흥리에 오산사(鰲山祠), 인계면 갑동리에 호계사(虎溪祠), 유등면 유촌리에 화남사(華南祠) 등이 있다.
동계면 구미리의 남원양씨종중문서 · 남원양씨종중문서가 있고, 순창읍 가남리의 설씨부인권선문첩과 신말주 선생의 십로계첩이 있다. 또한 순창읍 가남리에 신경준의 고지도가 있다. 남원양씨종중문서는 1995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설씨부인권선문첩은 1981년 보물로, 신말주 선생의 십로계첩은 1992년, 신경준의 고지도는 1979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정자로는 복흥면 상송리에 낙덕정과 순창읍 가남리에 귀래정, 동계면 구미리에 구암정, 적성면 평남리에 어은정, 쌍치면 둔전리에 영광정 등이 있다. 또한 팔덕면 청계리에 순창삼인대(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1973년 지정)가 있다. 낙덕정과 귀래정은은 1975년, 구암정과 어은정, 영광정은 1990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팔덕면의 산동리남근석(전북특별자치도 민속자료, 1979년 지정) · 창덕리남근석(전북특별자치도 민속자료, 1979년 지정), 1992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동계면 유산리의 나주임씨절도공파종중유품, 순창읍의 순창충신리석장승(중요민속자료, 1979년 지정) · 순창남계리석장승(중요민속자료, 1979년 지정) 등이 있다.
문헌 기록으로는 공양왕 때 현령을 지낸 최자비(崔自非)가 옥천동에 창건한 순창향교가 이 고장 최초의 교육기관이며, 뒤에 순창읍 교성리로 이전하였다.
또한 1607년(선조 40)에 설립된 순창읍 가남리의 화산서원, 1788년(정조 12)에 설립된 팔덕면 청계리의 무이서원, 1800년(정조 24)에 설립된 남산서원, 1827년(순조 27)에 설립된 쌍치면 둔전리의 어암서원과 훈몽재 등이 있어 많은 유생 교육에 힘썼다. 그리고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될 때까지 이들 서원이 존속하였다.
신교육기관으로는 1908년 대한제국의 사립학교령에 의거하여 사립 순화학교(淳化學校)가 처음 세워져 1911년에 순창공립보통학교로 개편되었다. 1941년에는 순창공립국민학교가 되었으며, 지금의 순창초등학교로 이어지고 있다. 1909년 사립 순화학교금성공교(淳化學校金城公校)가 설립되어 1913년 쌍치공립보통학교(雙峙公立普通學校)로 개편되었다가 다시 현재의 쌍치국민학교로 이어지고 있다.
중등교육기관으로는 1942년 순창공립농업학교가 설립되고 그 뒤 순창공립중학교가 되었다가 현재는 순창중학교와 순창농림고등학교로 분리 운영되고 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5개교, 중학교 7개교, 고등학교 3개교가 있다.
1958년 순창문화원이 설립되어 향토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매년 10월말이나 11월초에 순창민속예술제를 개최한다. 그 밖의 문화축제행사로는 고추장축제, 회문산회원제, 삼인문화제, 추령장승제 등이 있으며, 군청주최로 매년 4월 15일에 열리는 순창군민의 날 행사에서도 옥천순화줄다리기 등의 행사가 펼쳐진다.
정월 명절에 풍물놀이 · 윷놀이 · 공치기 · 제기차기 · 돈치기 · 장치기 · 연날리기 · 쥐불놀이 · 홰싸움 · 석전 · 승경도놀이 · 줄다리기 · 목마놀이 · 기세배 · 강강술래 · 닭잡이놀이 · 둥당기놀이 · 널뛰기 · 달맞이놀이를 한다. 3월에는 화전놀이 · 천렵놀이 등을 하며, 5월 단오에 그네뛰기, 7월에 호미씻기(술멕이), 8월 추석에 씨름 · 농악놀이 · 궁술대회 · 널뛰기 · 강강술래 · 물맞이, 9월에는 단풍놀이 등을 한다.
마을의 수호신으로서 선돌 · 당산나무(할아버지당산 · 할머니당산 · 천령 등을 대상으로 삼음.) · 누석단(纍石壇: 돌단) · 조탑(造塔) · 지음대(낟가릿대 · 솟대) · 장승 · 당집 · 산신당 · 서낭당 · 석불 · 수신당 · 샘 · 기암괴석 · 남근석(男根石) 등을 섬긴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마을에서 수호신을 정해 제를 올렸으나 현재는 숭배의 대상이 줄었고, 심지어는 동제를 지내지 않는 마을도 있다.
인계면 쌍암리에서는 음력 정월 13일 밤에 마을 뒤의 할아버지당산나무와 마을 서쪽 할머니당산나무에 온 마을사람들이 제를 지낸다. 탑리에서는 매년 정월에 마을 어귀의 당산나무와 남쪽의 누석단에서 도깨비제를 지냈다. 이곳은 마을 부녀자들만이 제를 지내는 것이 특색이며, 제수 또한 흰 쌀밥과 메밀묵뿐이다.
풍산면 삼촌리에는 450년 전 전주이씨들이 심은 당산수가 있는데 여기에 매년 정월 보름날 밤에 동제를 지낸다. 팔덕면 청계리에는 4그루의 당산수가 있는데, 정월 14일 밤 자정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농악을 울리면서 제를 지낸다.
월곡리에는 당산나무 두 그루와 당집이 있어 매년 정월 14일 밤에 온 마을 남자들이 제를 지낸다. 구룡리의 입석마을에는 5개의 선돌, 2그루의 당산나무, 2개의 누석단에서 입석당산제와 천룡제를 지낸다.
이 밖에 인계면 도룡리용바위의 기우제, 순창읍 남계리 동은마을의 각시탑축제, 팔덕면 산동리와 창덕리의 남성 성기 모양의 석조각을 섬기는 남근제가 있다. 구림면 금창리 금상골 누석단 주위의 지음대에 옛날에는 제를 지냈으나, 현재는 지내지 않는다.
이들 동제의 공통점은, 제주는 마을 수호신을 믿는 사람 중에서 부정 타지 않은 사람을 선발하고, 선정된 뒤에는 목욕재계하면서 근신하며, 제를 지낸 뒤에도 일정 기간 상가나 부정 탄 집에 가지 않으며, 제물은 간략하고 검소하게 차리는데 온 마을에서 추렴한다는 점이다.
이 고장의 대표적인 전설로는 「홀어머니산성전설」이 있다. 옛날 순창읍에 지체 높고 얌전하며 얼굴이 빼어나게 예쁜 과부가 있었다. 시집 간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을 잃고 수절하였다. 이 과부는 성이 양씨였으므로 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양과부라 불렀다.
같은 마을에 설씨라는 권세 있고 지체 높은 선비가 살고 있었는데 양과부에게 청혼하였다. 양과부가 청혼을 거절하자 그는 다른 여자를 구해 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었으므로 양과부에 대한 짝사랑이 가슴에 깊이 박히고 말았다. 양과부에게 애원도 해보고 위협도 해보았지만 끝내 말을 들어주지 않자 마지막으로 내기를 청하였다.
설씨는 높이가 3자나 되는 나막신을 신고 서울까지 갔다 오고, 양과부는 작은 산에 성을 쌓는 일이었는데, 빨리 끝내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자는 것이었다. 양과부는 십중팔구 자기가 이길 수 있었으므로 마지막 청을 들어주고 설씨로부터 벗어나려고 하였다.
약속한 날 양과부는 열심히 성을 쌓아 놓고 안도의 숨을 쉴 때 마침 설씨가 돌아왔다. 양과부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으나 설씨가 양과부 치마에 아직 묻어 있는 흙을 발견하고는 이겼다고 좋아하였다. 양과부가 너무 안심한 나머지 치마의 흙을 털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기에 진 것을 깨달은 양과부는 수절할 수 없음을 알고 그 자리에서 수백 자 깊이의 물 속으로 몸을 던져 깨끗한 몸으로 죽은 남편의 뒤를 따라 죽었다고 한다. 그 뒤 사람들은 양과부가 쌓은 성을 ‘홀어머니성’이라 불러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이 고장에는 「사리랑타령」 · 「청상요」 · 「엿타령」 등의 민요가 전한다.
「사리랑타령」은 “인자나 가면 언제나 올까/언제 올 줄을 아이구 내가도 몰랐네/사리랑 둥게당실이 노든 사리랑//오라는 디는 밤에나 가아고 · 동네 술집이 아이구 대낮에 간다네/사리랑 둥게당실이 노든 사리랑//오동에 목판 거문고는/줄만 골라도 아이고 소리가 난다네/사리랑 둥게당실이 노든 사리랑.”하는 은근한 사랑노래이다.
줄만 골라도 소리가 먼저 울리는 거문고를 끌어안고, 애정을 담아 뽑아내는 가련한 여인의 노래처럼 그 곡조가 매우 부드럽다.
또한 「청상요」는 일반적인 과부노래와 내용이 비슷하고 한을 바탕에 깔고 있으나 반복되는 여음이 불교의 염불과 유사하여 주목을 끈다. 제1절을 보면 다음과 같다. “관하 모오보살/관하 모오보살/어어어어이/오늘저녁에는 여기서 놀건만/내일날은 황천고혼이 되겠네…….”
「엿타령」은 “자아 엿이야 엿/맛좋고 빛좋은/전라도 담양의 찹쌀엿/처녀가 먹으면/시집을 가고/총각이 먹으면/장게가는 엿/자아 떨어진 고무신이나/백철 부서진거나/삼베속옷 떨어진거나/있는대로 가지고와요/섣달 큰애기 개밥주듯 팔고가네/자아 싸구려/엿덜사요 엿덜사.”하는 일종의 외침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가락과 내용이 매우 재미있다.
예나 지금이나 엿은 좋은 역할을 하는 것인 듯, 시험 때마다 엿장수가 늘어나는 것이 지금의 풍습이라면 옛날에는 시집 못 간 노처녀와 때를 놓친 노총각을 이어 주는 엿장수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단란한 가정을 바라면서 그 소망을 노래한 「가족요」가 있는데 가사는 다음과 같다. “부모님 서신자리/노랑꽃이 피었네/낭군님이 서신자리/급제꽃이 피었네/이내몸 선자리에/효성꽃이 피었네/그 나무에 열매열어/각각수령으로 보내리라.”이 밖에도 「사슴노래」 · 「딸요」 · 「들노래」 · 「시집살이노래」 등이 구전되고 있다.
2008년 현재 농가인구가 군 전체인구의 약 41.3%를 차지하는 농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보이지만, 산간지대에 속하여 경지면적이 1만 113㏊로 20.7%의 낮은 경지율을 보인다. 논이 7,278㏊, 밭은 2,835㏊이며, 농가당 경지규모는 1.7㏊로 비교적 영세한 편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콩 등의 식량작물과 고추 · 무 · 배추 · 감 등이며, 양잠도 한다. 특히 이 곳에서 생산되는 고추는 껍질이 두껍고 맛이 좋으며, 메주콩도 당분이 많아 이들을 원료로 한 고추장은 예로부터 유명하다. 북서부의 산지에서는 고랭지채소 · 약초 · 잎담배 등이 많이 재배된다. 복흥면에서는 인삼도 재배되고 있다.
양잠농가는 많이 감소했으나 동계면과 구림면을 중심으로 아직도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감 · 배 등의 과수 재배면적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적성면과 팔덕면에서는 감, 금과면에서는 배가 많이 재배되고 있다.
한우 · 산양 · 닭 · 오리 · 꿀벌 등의 축산업도 활발하다. 구림면에서는 산양, 유등면 · 동계면에서는 닭, 구림면 · 쌍치면 · 동계면에서는 꿀벌이 많이 사육된다. 특히 풍산면에는 대규모 오리사육농장이 있다.
산지가 많아 밤 · 죽순 · 산나물 등 임산물의 생산이 활발하다. 도내에서도 대표적인 밤의 주산지로 구림면이 유명하다.
공업은 낙후했으나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소규모 가내수공업 형태의 고추장 제조공장이 설립되기 시작하여 군내의 전체 공장 가운데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주로 음식료품 관련 제품생산이 큰 비중을 차지하나 고령토 등의 비금속광물 생산도 조금씩 이루어진다. 순창읍에 있는 가남농공단지에는 현재 3개 업체가 입주하여 모두 가동중에 있다. 종사자수는 233명이다. 풍산농공단지에는 6개 업체에 37명의 종사자가 있다. 전통 수공업으로 예로부터 베개자수가 유명했지만 현재는 노동력 부족 등으로 그 명맥만 유지될 뿐이다.
군내에는 4∼5개의 정기시장이 열린다. 그러나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광주상권의 영향이 강해져 그 기능이 위축되고 있다. 순창읍 남계리의 순창장이 1·6일, 동계면 현포리의 동계장이 2·7일, 복흥면 정산리의 복흥장과 구림면 운남리의 구림장이 3·8일에 개설된다. 이들 장에서는 배추 · 무와 밤 · 고추 등이 거래된다.
특산물로는 고추장 · 토종꿀 · 밤 · 은어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이 고장의 기후와 물맛, 품질 좋은 고추와 콩, 그리고 독특한 제조기술로 만들어지는 고추장은 조선시대 이래 진상품으로 유명하다. 강천산에서 생산되는 토종꿀은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적성강의 은어 또한 이 고장의 명물로 알려져 있다.
도로는 읍을 중심으로 도로망이 형성되어 순창읍을 제외하고는 교통의 요지가 없다. 순창읍에는 전주와 임실∼전주, 남원∼담양, 그리고 곡성 등과 연결되는 국도가 교차하고 있다. 그리고 시가지 가까이에 광주대구고속도로가 통과하여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특히 전라남도 담양 쪽을 제외하고는 인접 시 · 군과 고개를 통해 이어지고, 전주보다 광주와 거리가 가까워 생활권이 전주권보다는 광주권에 더 가깝다. 특히 광주대구고속도로의 개통으로 광주와의 교통은 더욱 편리해졌다. 전주와의 교통도 1989년에 운암대교의 완공으로 임실읍을 통과하지 않고 전주와 직선으로 연결되어 매우 편리해졌다.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쌍치면과 복흥면지역은 노령산맥의 동사면 산간지역으로 교통이 불편한 편이다. 쌍치면에서는 전라남도 담양∼정읍 간 국도가 통과하며, 정읍시와 구절재(230m)를 통해서 연결된다. 복흥면에는 정읍시에서 내장산을 통과하여 전라남도 장성군의 백양사로 이어지는 내장산관광도로가 지난다.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강천산군립공원과 섬진강 상류인 적성강의 맑은 물이 흘러 예로부터 산 좋고 물 좋은 고장으로 알려져 왔다. 귀래정 · 합미성 · 홀어미산성 등의 유서 깊은 고적과 용골산(龍骨山, 645m) · 노적봉(露積峰, 568m) · 사자암 · 회문산 등의 명산이 있어 새로운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현재는 강천산군립공원을 중심으로 경관이 개발되어 있다. 기암괴석이 즐비한 8km의 강천산계곡에는 유서 깊은 강천사와 충절의 얼이 담긴 삼인대 · 병풍바위 · 용소 · 구룡폭포 · 범바위 · 부처바위 등이 있다.
현수교를 건너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 전망대에 이르면 강천산계곡의 수려한 경관을 내려다볼 수 있다. 분통골 · 적우제골 · 지적골 · 하누제골 · 물통골 · 큰우작골 · 작은우작골 · 탑상골 · 승방골 등의 계곡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계곡을 흘러내린 물은 중천(中川)으로 합류하여 강천호(剛泉湖)로 들어간다. 강천호는 이 물을 받는 저수지로 이 물을 평야지대에 농업 관개용수로 공급한다.
공원 안의 명승지로는 도선교 · 금강교 · 병풍바위 · 선관(仙冠) · 광덕정 · 투구봉 · 금강문 · 범바위 · 유상대 · 노서하전암 · 송음교 · 극락교 · 사천왕암 · 관음암 · 수좌굴 · 형제굴 · 비룡폭포 · 삼인대 등 불교와 관련되어 이름 붙은 경승지가 많다. 강천산에 올라 현수교로부터 583고지와 송락바위를 지나면 멀리 담양댐과 주변의 평야를 내려다볼 수 있는 금성산성에 이른다.
이 곳을 사계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으며, 강천호를 지나 강천산 초입에 들어서면 관광시설단지가 조성되어 각종 식당 · 토산품판매점 · 주차장 등이 있다. 이 곳은 광주대구고속도로의 개통으로 관광객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한편, 회문산은 공비의 잔당인 남부군 사령부가 있던 곳으로 최근에는 자연휴양림을 개발하고 방갈로 등을 설치하여 가족 단위나 단체관광객의 탐방이 잦아지고 있다. 순창읍은 전통음식인 순창고추장과 순창장아찌의 본고장으로 거리에 늘어선 전문업소들은 관광거리이기도 하고 관광객들의 쇼핑거리이기도 하다.
군에서는 기본답사, 순창읍권, 동남권, 서북권, 역사기행, 명당터 등의 다양한 코스의 테마여행을 개발하여 적극 홍보하고 있다.
군의 남부에 위치한 읍. 면적 21.15㎢, 인구 1만 370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순화리이다. 본래 순창군 지역으로 고려시대에는 좌부방(左部坊) · 우부방(右部坊)이라 불리다가, 1897년 방을 면으로 개칭하면서 좌부면 · 우부면 지역이 되었다. 1917년 좌부면과 우부면을 통합하여 순창면이 되면서 1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79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섬진강의 지류인 양지천과 경천이 합류하는 평지 위에 읍이 위치하며, 주변은 300여m 산지가 둘러싸여 전형적인 산간분지를 이루고 있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쌀 · 보리가 재배된다. 또한 양잠업과 한우 및 비육우를 사육하는 축산업이 발달하였다. 예로부터 주변이 고추의 명산지로 고추장과 관련된 토산품 생산이 많다. 옛날에는 진상품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전국시장에서 그 맛으로 성가가 높다.
교통은 남원∼광주, 전주 · 갈담 · 순창, 정읍과 곡성으로 통하는 도로가 있고, 광주대구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의 연계도 잘 되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순화리의 순창객사 · 삼층석탑, 교성리의 순창향교 · 대성전 · 석장승, 남계리의 석장승, 백산리의 홀어미산성, 가남리의 귀래정이 있다.
순화(淳化) · 남계(南溪) · 장덕(長德) · 복실(福實) · 백산(白山) · 교성(校星) · 가남(佳南) · 신남(新南) 등 8개 이가 있다.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83.51㎢, 인구는 2,72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운남리이다. 본래 순창군 지역으로 구산리에 있는 귀야우의 이름을 따서 이암방 또는 구암면(龜巖面)이라 하여 28개 이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구산 · 구암 · 성곡 · 율복 등 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35년무림면 전역을 병합하고 구암과 무림의 이름을 따서 구림면이 되었다.
여분산(如粉山, 774m) · 세자봉(世子峰, 701m)의 높은 산지가 발달하였다. 그리고 면 내의 모든 소하천들은 구림천(龜林川)에 합류되어 섬진강 상류를 이룬다. 남부에 중리들 · 남정들 · 둔터우 등에 농경지가 있다. 고랭지 기후가 뚜렷해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는 적설량이 많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쌀 · 보리를 생산하고, 특산물로는 감 · 밤 · 토종꿀이 있다. 특히, 양봉은 쌍치면과 함께 국내에서 생산량이 가장 많고 품질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통은 정읍∼순창 간 지방도와 인근으로 통하는 지방도가 있다. 문화유적은 안정리의 만일사 · 와요, 금창리의 요지 등이 있다.
운남(雲南) · 구암(龜巖) · 구산(龜山) · 성곡(聖谷) · 율북(栗北) · 안정(安亭) · 금천(錦川) · 금창(金昌) · 방화(芳花) · 운북(雲北) · 월정(月亭) · 자양(紫陽) · 구곡(九曲) · 화암(花巖) 등 14개 리가 있다.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27.30㎢, 인구 1,81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매우리이다. 본래 순창군의 목과면 지역으로 고례 · 송정 · 방축 · 매우 · 호치 등 11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금동면(金洞面)의 수양 · 고산 · 발산 · 산수 · 내동 · 연화 등 15개 리를 병합하여 금동과 목과의 이름을 따서 금과면이 되었다.
덕진봉(德津峰, 236m) · 장동산(315m) · 서암산(瑞巖山, 450m) · 아미산(峨嵋山, 515m) 등의 산이 있다. 그리고 아미산에서 발원한 내동천과 덕진봉에서 발원한 송정천이 동전리에서 합류하여 사천으로 들어간다. 사천 상류에 있는 여러 개의 소하천 연변에는 방축평야 · 목동평야 · 방성평야 등이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쌀 · 보리 등이 생산되고 잎담배도 생산된다. 교통은 전주 · 순창 · 담양으로 연결되는 국도가 통과하고 있다.
매우(梅宇) · 수양(水楊) · 발산(鉢山) · 내동(內洞) · 대성(大星) · 청룡(靑龍) · 방성(訪聖) · 남계(南溪) · 늑곡(勒谷) · 목동(木洞) · 방축(防築) · 고례(古禮) · 동전(銅田) 등 13개 리가 있다.
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은 57.09㎢, 인구 2,34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현포리이다. 본래 백제시대에는 돌평현 지역이었으며, 고려 초에는 남원부에 속하였다. 조선시대에 군으로 승격해 영계면(靈溪面)이라 하여 서호 · 창주 · 마상 · 현포 · 신촌 등 1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순창군 아동면의 용동 · 구미 · 동심 등 10개 리와 적성면의 평지리 일부, 남원군 성남면의 설탄리, 견소곡면의 추촌과 택촌의 일부를 병합하여 아동과 영계의 이름을 따서 동계면이 되었다.
무량산(無量山, 586m) · 용골산 · 노적봉 · 풍악산(楓岳山, 603m) 등 높은 산악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오수천과 섬진강이 흘러 남부 적성면 평남리에서 합류한다. 농업이 주산업이고 쌀 · 보리 · 고추가 많이 생산되는데, 특히 고추장과 은어가 유명하다. 교통은 순창∼오수를 잇는 도로가 통과하나 불편하다.
문화유적은 구미리에 남원양씨홍패와 구암정, 수정리에 난계사지, 신흥리에 합미성과 오산사가 있다.
현포(玄圃) · 서호(西湖) · 구미(龜尾) · 어치(於峙) · 동심(同心) · 관전(官田) · 신흥(新興) · 유산(柳山) · 이동(理洞) · 수정(水亭) · 주월(舟月) · 내령(內靈) · 수장(壽墻) 등 13개 리가 있다.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73.73㎢, 인구 2,39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정산리이다. 본래 순창군의 속현인 복흥현 지역으로 고려시대에는 복흥면이 되어 4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상치등면(上置等面)의 석보 · 행동 · 상 · 중 · 하리 등 8개 리를 병합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면 내에 신선봉 · 장군봉(696m) · 백방산(白芳山, 660m) · 도집산(都集山, 741m) 등 높은 산지가 있고, 북서부는 내장산국립공원의 일부가 된다. 섬진강 지류인 추령천(秋嶺川)과 장군봉에서 발원한 봉서천, 비룡치에서 발원한 서마천이면 내를 관류한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주곡작물과 담배를 생산한다. 축산업도 활발하고 비자와 버섯은 특산물이다. 교통은 순창 · 정읍 · 담양을 잇는 도로에 의존하며 산간이어서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봉덕리에 구암사, 상송리에 낙덕정이 있다.
정산(鼎山) · 서마(瑞馬) · 화양(華陽) · 동산(東山) · 반월(半月) · 봉덕(鳳德) · 농암(農巖) · 지선(芝仙) · 금월(錦月) · 어은(魚隱) · 대방(大榜) · 산정(山亭) · 주평(舟坪) · 상송(上松) · 하(下) · 답동(畓洞) · 석보(石洑) 등 17개 리가 있다.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78.55㎢, 인구 2,30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쌍계리이다. 본래 순창군 지역으로 치등소(置等所)의 아래쪽이 되므로 하치등면(下置等面)이라 하여 3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상치등면의 시산 · 요암 · 산수 · 신평 · 도고 · 석현 등 21개 리와 태인군 남촌일변면의 굴치리를 병합하고 하치동과 상치동의 이름을 따서 쌍치면이 되었다.
국사봉(655m) · 고당산 · 매봉(534m) · 깃대봉(644m) 등의 산지가 발달하였다. 그리고 방산천 · 중안천 · 옥산천 등의 소하천들이 추령천에 합류하여 옥정호(玉亭湖)로 흘러든다. 이 면은 도의 서부평야권과 동부산악권을 나누는 분수령이 되며, 겨울에는 적설량이 많아 교통이 끊기는 일이 잦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 · 보리 · 약초 · 고랭지채소 재배가 활발하다. 특산물인 토종꿀은 구림면과 함께 많이 생산되고 있다. 소 · 돼지 등 축산업도 발달하였다. 교통은 도로가 면의 동부 · 중부 · 서부를 통과하여 정읍 · 순창 · 담양으로 통하는 지방도가 있다.
문화유적은 둔전리의 어암서원 · 영광정 · 분청사지요지 등이 있다. 쌍계(雙溪) · 방산(芳山) · 종곡(鍾谷) · 신성(新城) · 탕곡(宕谷) · 중안(中安) · 둔전(屯田) · 시산(詩山) · 옥산(玉山) · 종암(鍾巖) · 학선(鶴仙) · 도고(道古) · 금평(金坪) · 양신(楊新) · 전암(田巖) · 운암(雲巖) · 용전(龍田) · 오봉(梧鳳) · 금성(金城) 등 19개 리가 있다.
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18.33㎢, 인구 1,37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외이리이다. 본래 순창군 지역에 속했으며, 면을 둘러싼 경천과 적성강 주위에 버드나무가 많아 버들방이라 불렸다. 그리고 오교 · 서원 · 내이 · 금판 · 무수천 등의 1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오산면의 두지동 일부와 남원의 생조벌면 금탄리 일부를 병합하여 6개 리를 관할하였다.
이 면은 군내에서 가장 면적이 좁고 높이 200m 이내의 저산지대로 유촌봉이 있다. 그리고 광덕산에서 발원한 경천이 면의 남부 경계를 관류하여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무수평야 · 유촌평야 · 외이평야 · 창신평야가 발달하여 군 내의 곡창을 이루고 쌀의 질도 우수하다. 농업이 주산업이고 쌀 · 보리 · 담배 · 땅콩 등을 재배한다.
교통으로는 전주 · 순창 · 남원, 전주 · 순창 · 담양 · 광주로 연결되는 국도가 지난다. 문화유적은 유촌리에 화남사, 오교리에 성지 등이 있다. 외이(外伊) · 창신(昌申) · 건곡(乾谷) · 유촌(柳村) · 무수(無愁) · 오교(梧橋) 등 6개 리가 있다.
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36.03㎢, 인구 1,78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도룡리이다. 본래 순창군 호계면 지역으로 심초 · 쌍암 · 장례 · 양암 · 성덕 · 도사 · 용암 등 1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화면의 가작 · 차치 · 외마 · 내마 등 8개 리와 우부면의 교항리 일부, 좌부면의 복동 일부, 유등면의 금판리 일부를 병합하여 인화와 호계의 이름을 따서 인계면이 되었다.
면 내에 두류봉 · 건지산 · 장덕산 · 세룡산 등의 산지가 있다. 양지천 · 세룡천 · 중산천이 흐르고 대체로 구릉성 야산지대로 이뤄져 있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 · 보리 · 잎담배를 재배하고, 밤도 많이 생산한다. 교통은 전주∼순창 간 국도와 순창∼남원 간 국도가 지난다.
문화유적은 갑동리의 호계사 등이 있다. 도룡(道龍) · 갑동(甲洞) · 쌍암(雙巖) · 탑(塔) · 세룡(細龍) · 마흘(馬屹) · 가성(加城) · 중산(中山) · 지산(芝山) · 노동(蘆洞) · 심초(深草) 등 11개 리가 있다.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32.69㎢, 인구 1,45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고원리이다. 본래 백제시대에는 역평현(礫坪縣) 지역으로 통일신라시대에는 적성현(赤城縣)이라 하여 순화군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시대 순화군이 순창현으로 강등되었다가 다시 순창군으로 승격되자 이 지역을 적성면이라 하여 지북 · 율지 · 대산 · 사동 · 운곡 · 지내 · 임동 등 2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호계면 가목리 일부와 인화면 내마리 일부, 임실군 괴정리 일부를 병합하여 관할하였다. 193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동계면 괴정리를 편입하여 현재에 이른다.
면의 북부는 300∼600m의 산지로 두류봉 · 화산 · 새목재가 있다. 하천으로는 옥정호에서 발원한 적성강이 흘러 섬진강 상류를 형성한다. 하천유역에 괴정들 · 원들 · 내적들 · 지북평야가 있는데 적성강의 물을 이용한 관개조직이 발달해 곡창지대를 이룬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 · 보리가 생산되고, 산지에서는 감 · 밤의 생산이 많다.
교통은 순창∼남원을 연결하는 도로가 통과하나 불편하다. 문화유적은 괴정리의 화산서원, 평남리의 어은정, 석산리의 불암사지 등이 있다. 고원(古院) · 지북(支北) · 대산(大山) · 운림(雲林) · 내월(內月) · 평남(平南) · 괴정(槐亭) · 석산(石山) 등 8개 리가 있다.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은 39.47㎢, 인구 1,74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용산리이다. 본래 순창군 지역으로 팔등면(八等面)이라 하여 입석 · 신평 · 궁산 · 구항 · 복정 · 사정 · 죽림 · 신남 등 1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덕진면(德津面)의 분통 · 통천 · 파랑 · 백암 · 동고 · 평창 등 14개 리를 병합하여 팔등과 덕진의 이름을 따서 팔덕면이 되었다.
무이산 · 산성산 · 광덕산이 있고, 경천 · 강천천 · 장안천 · 덕천이 관통하여 흐른다. 유역에 통천평야 · 창덕평야 · 월성평야 등이 있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 · 보리 · 잎담배 · 참깨 · 약초 등을 재배한다. 교통은 면의 중앙을 순창∼정읍 간 도로가 지난다.
문화유적은 청계리에 무이서원 · 삼인대와 강천사 · 강천사오층다보탑 등이 있으며, 산동리와 창덕리에는 남근석이 있다. 용산(龍山) · 구룡(九龍) · 월곡(月谷) · 광암(廣巖) · 청계(淸溪) · 서흥(瑞興) · 산동(山東) · 장안(長安) · 창덕(昌德) · 덕천(德川) 등 10개 리가 있다.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28.10㎢, 인구 1,93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반월리이다. 본래 순창군 지역으로 품곡방(品谷坊) 또는 풍남면(豊南面)이라 하여 상죽 · 하죽 · 이목 · 월산 · 월명 등 1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오산면의 백가 · 두지 · 대동 · 승팔 · 점촌 등 8개 리와 우부면의 탄금리 일부를 병합하여 풍남과 오산의 이름을 따서 풍산면이 되었다.
설산 · 아미산 등의 산지가 있다. 봉황산에서 발원한 사천이 면 내를 흘러 대가평야 · 반월평야 등을 형성하면서 곡창을 이룬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 · 보리 · 잎담배가 재배된다. 교통은 순창∼옥과간 국도가 지나며, 옥과를 통하여 호남고속도로에 진입할 수 있다.
문화유적은 대가리에 옥출산성지가 있다. 반월(半月) · 유정(柳亭) · 삼촌(三村) · 금곡(金谷) · 죽전(竹田) · 우곡(牛谷) · 한내(閑內) · 대가(大佳) · 두승(斗升) · 용내(龍內) · 상촌(上村) · 죽곡(竹谷) 등 12개 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