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7년(태종 7) 성동리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550년에 이건하였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며, 1801년(순조 1)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 동무(東廡) · 서무(西廡) · 명륜당 · 동재(東齋) · 서재(西齋) · 풍화루 · 수호실 등으로 되어 있으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의 위패가 동무 · 서무에는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건축형태는 앞쪽은 강학 공간인 명륜당이 앞쪽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뒤쪽에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형식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는 1985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전교(典校) 1인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소장전적으로는 교생의 명부인 《유생안 儒生案》이 가장 많다.
그 밖에 필사본인 《청금록 靑衿綠》 · 《양사재절목 養士齋節目》 · 《순천부교원이정정식절목 順天府校院釐整定式節目》 · 《향교전답등서안 鄕校田畓謄書案》 · 《보민고절목 補民庫節目》 등 조선 후기의 향교와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