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창건시기는 미상이며, 처음에 순흥부(順興府) 북쪽 금성(金城)에 창건되었다가 1718년(숙종 44) 동쪽 위야동으로 이건하였다.
1750년(영조 26) 남쪽 석교리(石橋里)로, 1770년(영조 46)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971년에 중수하고 1975년에 누각과 단청을 보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7칸의 대성전, 6칸의 명륜당, 각 5칸의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4칸의 동재(東齋), 7칸의 문루(門樓), 삼문(三門) · 협문(夾門) · 주사(厨舍)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의 위패가 동무 · 서무에는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교육시켰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졌다.
대신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여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현재 전교(典校) 1인과 장의(掌議) 수인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