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구이(懼而). 신정미(申廷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형조판서 신점(申點)이고, 아버지는 신순일(申純一)이며, 어머니는 이광현(李光顯)의 딸이다.
1595년(선조 2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주서가 되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실록의 중간에 참여하였고, 병조정랑·경기도사·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두루 거쳐 평안도어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어천도찰방(魚川道察訪)·예조정랑을 지내다 광해군이 즉위한 다음 『선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봉산군수 때 병조의 문서를 위조하여 사용하던 김경립(金景立)을 체포한 공으로 당상관에 올랐다.
또, 체포한 죄인을 엄하게 문초하여 김직재(金直哉)·김백함(金百緘)이 김제남(金悌男)과 함께 모반한다고 보고하여 일대 옥사가 일어났다. 이때의 활동이 대개 대북파(大北派)에 의한 소북파(小北派)의 숙청을 지원한 것이 되었다. 그 뒤 이러한 훈공이 인정되어 예조참판에 오르고 형난공신(亨難功臣) 1등으로 영풍군(永豊君)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