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천휴(天休), 호는 임하당(林下堂). 신여길(申汝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호조정랑 신상철(申尙哲)이고, 아버지는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 신형구(申衡耉)이며, 어머니는 참의 성시헌(成時憲)의 딸이다.
1666년(현종 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승문원부정자로 처음 벼슬길에 올라 1676년(숙종 2)에는 병조좌랑이 되었다.
이듬해에 도당(都堂)이 선발하는 홍문록(弘文錄: 홍문관의 제학이나 교리를 선발하기 위한 제1차 인사기록)에 올랐으나, 대사간 이원정(李元禎)으로부터 유아(儒雅: 유교의 바른 도리)가 아니라는 탄핵을 받았다.
그 뒤 정언(正言)·지평(持平)·부수찬(副修撰)·장령(掌令)·사간·강춘도감사(江春道監司)·승지·형조참판을 거쳐 충청감사가 되었다. 충청감사 재직시에 친구의 사설 도판(屠販: 짐승을 잡아 파는 일)을 허락해주었다는 죄로 좌의정 윤지선(尹趾善)의 탄핵을 받았으나, 참판으로 접반사(接伴使)가 되기도 하였다.
1698년에 감사로 재직할 때 도내 산을 점유하여 묘막(墓幕: 산소 근처에 지은 작은 집)을 미리 설치하였다는 이유로 민진원(閔鎭遠)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그러나 곧 동지의금부사에 복직되어 이성휘(李聖輝)·송성(宋晟) 등의 옥사(獄事)를 극론하는 소를 올렸다.
그러나 1700년에 당상(堂上)으로서 죄인 김인지(金麟至)를 변호하다가 정언 윤헌주(尹憲柱)의 탄핵에 의하여 파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