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공주 출신. 1907년 6월 윤이병(尹履炳) 등 동지들과 함께 동우회를 조직하여 일제의 침략을 규탄하고 매국단체 일진회(一進會)를 성토하였다.
일제가 1907년 7월 헤이그특사사건을 구실로 고종을 강제 양위시키고 일본인 차관을 임명하여 침략정책을 강화하자 심원택은 동우회 회원들과 함께 결사대를 조직하여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와 연합, 격렬한 항일시위운동을 전개하고 이완용(李完用)의 집을 불태워버렸으며 일본경찰과 격렬한 투석전을 벌였다.
이 사건으로 1908년 1월에 10년 유배형을 언도받고 전라남도 지도(智島)에 2년6개월간 유배당하였다. 유배에서 풀린 뒤 1910년 8월 일제가 강점하자 통분하여 병석에서 죽었다.
1977년에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