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안국사지 석조 여래삼존 입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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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조각
유물
국가유산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 안국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唐津 安國寺址 石造如來三尊立像)
분류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63년 01월 21일 지정)
소재지
충청남도 당진시 원당골1길 188 (정미면)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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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 안국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내용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은 안국사지 경내에 있다. 석조여래삼존입상은 무릎 아랫부분이 매몰되어 있었으나 2004년 충청남도역사문화원의 발굴조사를 통해 불상의 발과 대좌가 모두 확인되었다.

중앙의 본존불상은 머리와 신체가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대형 석불입상이다. 머리 위에는 화불이 장식된 보관을 착용하고 있으며 보관 위에 방형의 보개가 있다. 본존불상의 이마에는 백호가 있는데 백호 위에 또 다른 원형의 구멍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상호는 턱 부분에 약간 살이 올라있으며 눈·코·입 등이 얼굴 중앙에 몰려 있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흘러내렸고 목은 짧으며 삼도는 없다. 왼손은 엄지와 검지를 맞댄 채 복부에 위치하고 있다.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를 붙이고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하여 가슴에 대고 있다. 본존불상의 발부분은 별도의 석재에 발가락을 표현하여 조성하였다. 발의 길이는 40㎝이며 개태사 석조삼존불입상의 발과 유사한 상자 모양이다. 본존불상의 대좌는 3m가 넘는 자연 암반의 상면에 방형의 대좌를 선각의 방식으로 조성하였다.

우협시 보살상은 머리에 인동당초문 형태의 초문(草紋)이 장식된 비교적 높은 보관을 쓰고 있다. 이마에는 백호가 있으며 이마와 보관 사이에는 반원형의 머리카락이 촘촘히 새겨져 있다. 상호는 눈·코·입 등이 오밀조밀하게 표현되어 얼굴 중앙에 몰려 있다. 귀는 긴 편이며 귀 가운데를 한 가닥의 보발이 가로질러 귓불 부분으로 내려오고 있다. 목에는 삼도가 보이며 삼도의 아랫부분에는 목걸이 장식이 있다. 법의는 우견편단이며 양 팔뚝에 팔찌(腕釧)가 새겨져 있다. 수인은 양손 모두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한 채 오른손은 가슴 부분에 부착하고 있고 왼손은 배 부분에 대고 있다. 우협시 보살상의 대좌는 원형이며 대좌 상면에는 발이 조각되어 있다. 대좌의 지름은 130㎝, 두께는 33㎝이다.

좌협시 보살상은 머리 부분이 파손되어있으며 현재 파손된 보관만이 몸통 위에 놓여 있다. 좌협시 보살상의 복부에는 리본 형태의 띠 매듭이 새겨져 있다. 좌협시 보살상의 모습은 수인의 손 위치가 다른 것 외에는 전체적으로 우협시 보살상과 동일한 모습이다. 좌협시 보살상의 대좌는 평면 방형이며 대좌의 크기는 90㎝, 두께는 43m이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명문기와와 막새기와를 통해 조성 시기를 유추할 수 있다. 2004년 실시된 발굴조사에서는 ‘태평십(太平十)’명 명문 기와가 출토되었다. 발굴단은 이 시기를 요(遼)의 성종(1021~1030) 연간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태평십’은 1030년(현종 21)임을 밝혔다. 안국사지에서는 막새 기와가 단일 종류의 것만이 출토되고 있어 ‘태평십’명 기와를 안국사 창건기의 기와로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이 시기에 조성된 불상으로 여겨진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에서 주목되는 형식적 특징은 본존불상이 방형의 보개를 착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면류관 형태의 방형 보개는 고려 광종대 조성된 불상에서 처음 등장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안성 매산리 석조보살입상, 논산 관촉사 석조보살입상, 부여 대조사 석조보살입상을 들 수 있다. 면류관 형태의 방형 보개를 착용하고 있는 불상의 조성 배경은 ‘황즉불(皇卽佛)’ 사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의 경우 광종대 조성된 면류관 형태의 방형 보개를 착용한 불상보다 형식화되어있는데, 불상이 제작된 11세기 전반에도 고려는 여전히 황제국 체제를 표방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의 조성 배경에도 ‘황즉불’사상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태봉과 고려 석조미술로 보는 역사』(정성권, 학연문화사, 2015)
「고려 전기 신양식 석불의 전개와 조성배경」(진정환, 『미술사학연구』287, 2015)
「중원미륵리사지 조성시기 고찰」(정성권, 『동악미술사학』9, 2008)
집필자
정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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