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자승(子昇), 호는 구음(龜陰). 양공준(楊公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사복시부정(司僕寺副正) 양홍(楊洪)이고, 아버지는 병조정랑을 지낸 양사형(楊士衡)이다. 어머니는 최영(崔嶺)의 딸이다.
1605년(선조 38) 진사가 되고, 다음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광해군 때 지평(持平)·정언(正言) 등을 지냈다. 1615년 지평으로 있을 때, 신경희(申景禧) 등과 함께 능창군 이전(綾昌君 李佺)을 추대하는 반역을 도모하였다는 익산사람 소명국(蘇明國)의 고발로 인하여, 장형(杖刑)을 받고 함경도 종성으로 귀양가던 도중에 죽었다. 인조반정 후 누명임이 밝혀져 관직이 복구되고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