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언신(彦信). 양성지(梁誠之)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첨정 양사제(梁思齊)이다.
음보(蔭補)로 관직에 나아가, 적성현감을 거쳐 1592년 삭녕군수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삭녕에 와 있던 경기도관찰사 심대(沈岱)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적의 야습을 만나 끝까지 항전하다가 순사(殉死)하였다. 1796년(정조 20) 손자인 양성묵(梁性默)이 절제(節製)에서 장원한 것을 계기로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삭녕의 표절사(表節祠)에 향사(享祠)되었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