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 박병호(朴柄昊)가 여수시 중앙동 337의 2번지에서 창간한 『대중신문(大衆新聞)』이 그 전신이다.B4판 2면의 시사일간지로 출발한 이 신문은, 1947년 6월 주식회사로 사조직을 개편하고 정재완(鄭在浣)을 사장에 선임하였다.
1948년 1월 제호를 ‘여수일보’로 바꾸었으며, 그해 10월 여수반란사건 때는 사옥이 소실되기도 하였다. 이 신문은 인쇄시설의 미비로 시종 사진과 동판을 거의 쓰지 않았다는 것이 특색이다.
취재진의 부족으로 국내외의 모든 정치문제는 외신이나 서울발 통신에 전적으로 의존하였고, 사설도 3, 4일 또는 1주일에 한 번씩 게재하였다. 논평기사는 거의 없었으며, 독자투고란 「할 말이 있다」는 정기적으로 실었다.
경영난으로 1960년 4·19 이후 정기적인 발행을 하지 못하였고, 또 휴간보고서를 제출하지 않고 납본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관계기관에 고발되는 등 수난을 겪으며 연명해오다가, 5·16 이후인 1961년 5월 28일 공보부령 제1호 시설기준 미달로 등록이 취소, 폐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