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연파(燕頗)

고대사인물

 남북국시대 발해의 멸망 후 거란에 대항한 부흥운동가.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연파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남북국시대 발해의 멸망 후 거란에 대항한 부흥운동가.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발해가 멸망한 뒤 각 지역에서 거란에 대항하는 유민 세력이 나타나는데, 그의 세력도 그 하나였다. 그는 거란 황룡부(黃龍府)의 위장(衛將)을 역임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와 활동사항
연파는 975년 7월도감(都監)장거(張琚)를 살해하고 거란에 반기를 들었다. 이에 거란이 야율갈리필(耶律曷里必)을 보내 토벌하게 하였다. 결국 야율갈리필이 9월에 치하(治河)에서 연파를 격파하고 그의 동생을 보내어 연파를 추격하도록 하자, 연파는 올야성(兀惹城)으로 도망하였고, 거란군도 추격을 멈추고 돌아갔다.
올야성은 오사국(烏舍國)의 중심지로서 발해 유민들이 이 나라의 지배층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그의 소식이 끊겼다가 995년 7월 올야부의 오소도(烏昭度)와 함께 철려(鐵驪)주 01)를 공격하자, 요나라가 해왕(奚王)화삭노(和朔奴) 등을 보내어 이를 치도록 한 기록이 다시 한 번 나타난다. 이것을 보면 연파는 올야성으로 피신한 뒤에도 올야부의 지도자인 오소도와 함께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지만, 구체적인 상황은 알 수 없다.
한편, 발해 유민국가인 정안국(定安國)이 981년 송나라에 보낸 글에 의하면 “부여부가 잠시 거란에 반기를 들었다가 모두 정안국에 들어왔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거란에 반기를 들었다는 것은 연파가 거란에 항거한 사실을 의미하며, 모두 정안국에 들어왔다는 것은 연파가 올야성으로 피신한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이 때 정안국의 세력이 오사국에까지 미쳤던 것을 알 수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요사(遼史)

  • 송사(宋史)

  • 『渤海國志長編』(金毓黻,華文書局,1934)

  • 「고려(高麗)와 발해(渤海)」(이용범,『한국사』 4,국사편찬위원회,1974)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鐵利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송기호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