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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역대 임금들이 저술한 시문을 수록한 어제(御製). 시문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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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역대 임금들이 저술한 시문을 수록한 어제(御製). 시문선집.
내용

104권. 처음에는 목판본으로 되었으나 영조의 어제부터는 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어제’란 임금들이 지은 글을 말한다. 인조 때에 처음 편집, 간행되었다. 숙종대 이후로는 왕이 바뀔 때마다 선왕의 어제를 편집해 앞 시기의 어제에 덧붙여 간행한 것으로, 태조에서 철종까지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목록이 따로 있고 각 임금의 어제 말미에는 교정과 감인(監印)에 참여한 신하들의 명단이 밝혀져 있다. 경종의 어제까지에는 신하들이 쓴 발문이 붙여져 있다. 본문에는 각 글이 쓰여진 연대가 밝혀져 있으며, 그 글의 내력을 적은 소서(小序)가 붙여져 있는 경우가 많다.

『열성어제』의 최초의 간행은 1631년(인조 9)에 의창군(義昌君) 이광(李珖)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태조 이후 선조까지의 임금들 중에서 단종과 연산군을 제외한 12대 임금들의 글을 편집해 1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그 뒤 1679년(숙종 5)에 복창군(福昌君) 이정(李楨)이 그것을 보완하고 인조·효종·현종의 글들을 합해 역시 1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이를 ‘열성어제보유’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 책들에는 탈락된 어제가 많아서 낭선군(朗善君) 이우(李俁)가 숙종의 재가를 받아 민간에 흩어져 있는 어제를 모으고, 해당 사관(史官)에게 실록을 중심으로 한 사서에 들어 있는 것들을 정리하게 하는 등 널리 자료를 모아 8편을 편집하였다. 이것을 숙종이 권유(權愈)에게 바로잡게 한 뒤 1682년에 8권 4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이리하여 태조에서 현종대까지 어제의 정리·간행이 일단락되었다.

그 뒤 임금이 바뀔 때마다 어제를 정리해 숙종·경종·영조·정조·순조·익종·헌종·철종의 어제가 간행되었다. 숙종의 어제는 1720년(경종 즉위년)에 송상기(宋相琦)·이관명(李觀命)이 편찬하고, 김민택(金民澤)·유척기(兪拓基)·김제겸(金濟謙) 등이 교감(校勘)해 9권(전체 열성어제의 권9에서 권17로 간행되었는데, 제17권은 후대에 卷次에서 빠지고 별편으로 처리되었음.)으로 간행되었다. 말미에 예조판서 이관명의 발문과 김민택 등 교감 작업에 참여한 신하들의 명단이 있다.

경종의 어제는 1726년(영조 2)에 종실인 서성도정(西城都正) 이작(李焯)의 건의에 의해 여성군(礪城君) 이집(李楫)과 홍석보(洪錫輔) 등이 편집, 간행해 권18로 간행되었다. 그러나 위의 권17이 별편으로 처리되면서 권17로 제책되었다. 이의현(李宜顯)의 발문이 있다. 그리고 이 책이 편찬될 때 그 때까지의 『열성어제』 전체의 목록과 그에 대한 범례가 작성되어 2권 1책의 목록으로 첫머리에 덧붙여졌다.

영조의 어제는 영조가 죽기 전에 영조 자신에 의해 편찬 원칙이 마련되었으며, 1776년 정조가 즉위한 뒤 즉시 간행되어 활자로 인쇄되었다. 편차(編次)는 오광운(吳光運)·원경하(元景夏) 외 10인이, 교정은 구윤명(具允明)·채제공(蔡濟恭)·홍국영(洪國榮) 외 10인이, 감인은 김홍운(金洪運)이 담당했으며, 발문은 없다. 이 어제는 권18에서 권37로 제책되었다.

정조의 어제는 1814년(순조 14)에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가 간행된 뒤 기존의 『열성어제』에 정조의 어제를 간행해 붙이라는 순조의 명에 따라 규장각에서 편집해 1814년 6월에 간행하였다.

교정은 규장각 제학(提學)인 김재찬(金載瓚)·김조순(金祖淳)·심상규(沈象奎) 외 12인이 담당하고, 감인은 규장각 검서관(檢書官)인 성해응(成海應)·원유진(元有鎭)·유본학(柳本學)·서유은(徐有殷) 외 4인이 담당하였다. 서문과 발문은 없으며, 권38에서 권77로 제책되었다.

순조와 익종의 어제는 1836년(헌종 2)에 간행되었으며, 교정은 남공철(南公轍)·심상규 등 20인이, 감인은 유본예(柳本藝)·원유영(元有永) 외 4인이 담당하였다. 순조의 어제는 권78에서 권89까지로 제책되었으며, 익종의 어제는 권90에서 권95로 제책되었다.

헌종의 어제는 1850년(철종 1)에 본문 5권과 목록 1권으로 간행되었다. 교정은 조인영(趙寅永)·정원용(鄭元容) 등 27인이 담당했고, 감인은 박종염(朴宗琰)·김구순(金龜淳)·안계량(安季良) 외 6인의 규장각 검서관이 담당하였다. 이 어제는 권96에서 권100으로 제책되었다.

철종의 어제는 1865년(고종 2)에 간행되었으며, 교정은 정원용·김흥근(金興根)·조두순(趙斗淳) 등 33인이 담당하였고, 감인은 안계량·유담(柳曋)·권철인(權喆仁)·정일우(鄭日愚)·정대영(丁大英) 등이 담당하였다. 이 어제는 권101에서 권104로 제책되었다.

조선 역대 군주 중 폐출 군주인 연산군·광해군의 어제가 의도적으로 탈락되었으며, 왕으로 추존된 인물로는 익종의 어제가 포함된 것이 특색이다.

권1∼8은 태조부터 현종까지의 어제이다. 권1에는 태조의 시(詩) 5수, 문(文) 6편, 정종의 시 1수, 태종의 시 11수, 문 1편, 권2에는 세종의 시 1수, 문 20편, 문종의 시 7수, 문 4편, 권3에는 세조의 시 33수, 권4에는 세조의 문 87편, 예종의 문 2편이 실려 있다.

권5에는 성종의 시 187수, 권6에는 성종의 문 39편, 중종의 시 3수, 문 1편, 권7에는 인종의 시 16수, 문 10편, 명종의 문 4편, 선조의 시 60수, 문 20편, 권8에는 인조의 문 7편, 효종의 시 100수, 문 29편, 현종의 시 3수가 수록되었다.

태조의 시에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 나라를 세우는 기상이 담겨 있으며, 신우(辛禑)에게 올린 서(書)나 공양왕에게 바친 전(箋), 정도전(鄭道傳)에게 보낸 서 등이 있다. 태종의 글에는 명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다룬 시들과 방간(芳幹)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세종의 문에는 각 도 관찰사에게 내린 유서(諭書)가 많으며, 그밖에 김종서(金宗瑞) 등 신하에게 내린 편지가 대부분이다. 문종의 문도 유서와 제문 등으로 되어 있다. 영조대 이후에 간행된 『열성어제』에는 영월에서 지은 단종의 시 2수가 추가되어 있다.

세조의 시는 신하들을 선발한 일을 읊은 것이나, 신하들의 시에 화답한 것 등 군신간의 교유 관계를 다룬 시가 많다. 문에는 「용인(用人)」·「신형(愼刑)」 등 정치의 원리와 방도를 서술한 것과, 『진법(陣法)』·『역대병요(歷代兵要)』 등 병서에 대한 서(序)가 많다.

예종의 문은 교(敎)와 전지(傳旨) 등이다. 성종의 글은 시가 가장 많은데 궁중에서의 생활이나 월산대군(月山大君) 등 왕족과의 유대 관계에서 우러나온 것과 물품을 하사하면서 써준 것들이 적지 않다. 인종의 글은 부왕(父王)과 모비에게 올린 시문이 많다. 선조의 시문은 신하들에게 내려준 것이 많으며, 인조의 문 역시 모두 왕족 또는 신하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효종의 시는 인평대군(麟坪大君)의 시에 차운한 것이 가장 많고, 그 밖에는 신하들에게 내린 것과 궁중 생활과 자연을 노래한 것이 대부분이다. 문에는 세자 책봉을 사양한 상소와 인평대군에 대한 제문, 그리고 대개는 편지이다. 효종의 시는 자연을 읊은 것, 종실에게 보낸 것들이다.

권9∼16과 별편은 숙종의 어제이다. 권9∼12에는 시 718수, 권13∼16에는 문 301편이 수록되었다. 별편에는 시 31수, 문 7편이 수록되었는데, 본래 권17로 제책되었다가 후대에 권(卷)의 일련번호에서 빠지고, 별편으로 처리되었다.

숙종의 시는 「추야(秋夜)」·「희청(喜晴)」·「대우(大雨)」 등 자연을 노래한 것과 「지리산」·「한라산」과 같은 산에 대한 것, 「근정전구지유감(勤政殿舊址有感)」·「통명전(通明殿)」과 같이 궁중의 풍물을 읊은 것 등이 있다.

이 외에 「복상일우제(卜相日偶題)」·「행성균관알선성(幸成均館謁先聖)」·「정월오일숭정문조참(正月午日崇政門朝參)」과 같이 정치 교화적인 것, 「제이징산수도(題李澄山水圖)」·「제이명욱수묵인물도(題李明郁水墨人物圖)」와 같이 그림이나 글씨에 제한 것 등 다양한 주제와 형식을 다루고 있다.

그의 문에는 장렬왕후를 비롯한 왕비들에 대한 행록(行錄)·치제문·기우제문·각종 윤음, 종실과 신하들에게 내린 편지가 있다. 이 밖에 『천자문』·『무원록(無寃錄)』 등 책에 붙인 서(序), 궁중의 건물들에 대한 기(記), 선대왕들의 어제·어필에 대한 찬(贊) 등 다양한 형식의 글들이 많다.

권17은 경종의 시 8수와 문 17편이 수록되어 있다. 경종의 시는 봄을 소재로 국가의 안녕을 기원한 것, 민진후(閔鎭厚)의 처에게 내려준 것 등이 있다. 문에는 숙종으로부터의 선위(禪位)를 사양한 상소를 비롯해 「삼계삼등론(三階三等論)」·「군자소인상반론(君子小人相反論)」 등이 있다.

권18∼37은 영조의 어제로 권18∼21에는 시가 약 850여 수 실려 있고, 권22∼37은 모두 문으로 되어 있다. 문에는 각종 제문·훈유(訓諭)·칙유(飭諭)·윤음·서(書)·서(序)·기(記)·발문 등이 실려 있다. 끝에는 ‘권하소지(卷下小識)’라 하여 영조 자신이 붙인 발문이 있고, 이어 편찬과 간행에 참여한 관원 명단이 수록되었다.

영조의 시는 숙종의 것과 마찬가지로 소재와 주제가 다양하며, 자신의 글을 정치의 한 방편으로 이용하고 있음이 역력하다. 대표적인 문으로는 「입기사일작(入耆社日作)」·「추풍가(秋風歌)」 등의 가사와 세제 책봉을 사양하는 상소, 여러 왕후의 일생을 서술한 행록, 세자·세손에 대한 묘지(墓誌), 『감란록(勘亂錄)』·『성학집요(聖學輯要)』에 붙인 서(序) 등이 있다.

권38∼77은 정조의 어제이다. 권38∼41까지에는 시가 지어진 연대순으로, 권42∼77은 문으로 되어 있다. 시로는 군왕의 기상과 도를 읊은 「일(日)」·「월(月)」이 있으며, 「영월(詠月)」·「희우(喜雨)」와 같이 자연현상을 읊은 것, 「경회루지(慶會樓池)」·「국도팔경(國都八景)」과 같이 궁중이나 국도의 풍물을 읊은 것 등이 실려 있다.

이외에 「독항우본기(讀項羽本紀)」·「만리장성도(萬里長城圖)」와 같이 책이나 지도를 보고 지은 것, 지방관으로 나가는 신하에게 준 「신제학김종수출안관서(贐提學金鍾秀出按關西)」, 『국조보감』의 찬집을 맡은 신하들에게 내린 「시찬집제신(示纂輯諸臣)」, 악장인 「자궁임화성행궁진찬악장(慈宮臨華城行宮進饌樂章)」 등이 있다.

권42에는 「답궁료서(答宮僚書)」·「여빈객서(與賓客書)」 등 23편의 서(書)가 실렸다. 세손으로 있을 때 자신을 보도하는 신하들에게 보낸 것으로서 학문적인 문제들을 논한 것이다.

권43에는 세손으로 있을 때의 저술로 「양현전심록서(兩賢傳心錄序)」·「영취정기(映翠亭記)」·「명장우열론(明章優劣論)」·「화상자찬(畵像自贊)」·「신언잠(愼言箴)」·「존현각명(尊賢閣銘)」 등과 잡저인 「제해동신감(題海東臣鑑)」·「삼경사서정문발(三經四書正文跋)」 등 새로 펴낸 책에 대한 글들이 있다.

권44에는 『궁원의(宮園儀)』·『규장각지(奎章閣志)』 등 정조가 편정(編定)하거나 편찬을 명령한 서적들에 붙인 서(序)·인(引)·서(敍)·제(題)·발 등 29편이 실려 있다. 권45에는 공묵합(恭默閤)·경춘전(景春殿)에 대한 기 등 28편이 있다. 권46에는 능묘와 여러 사적지의 비명(碑銘)이 23편 수록되었다.

권47에는 「현륭원지(顯隆園誌)」와 「영종대왕행록 英宗大王行錄」이 실려 있다. 권48∼53에는 501편의 각종 제문이 수록되어 있다. 국가 왕실의 각종 의식에 쓰인 고유문(告由文)·진향문(進香文)·전작문(奠酌文)과 서원이나 신하에게 올리게 한 치제문(致祭文)·축문(祝文), 기우제나 여제(厲祭)의 제문, 성황에 올린 제문 등이다.

권54∼57에는 임금이 특별히 신하와 백성들에게 내린 윤음, 권58∼64에는 국정에 대한 정조의 지시 내용인 교 197편이 실려 있다. 권65에는 고위 관직자나 유현(儒賢)에게 내린 돈유(敦諭) 37편, 권66에는 관찰사·어사·사신(使臣)·지방 사민(士民) 등에 내린 유서(諭書) 17편이 수록되었다.

권67∼71에는 신하들의 상소에 대한 임금의 비답(批答)이 186편 실려 있다. 윤음 이하 비답의 내용은 홍인한(洪麟漢) 처단 등의 정치적 사건, 과제변통(科制變通)·형구이정(刑具釐正) 등의 제도 개혁 및 의례·진휼·포상 등과 같이 국정 전반에 대한 구체적인 처리 내용과 국정 운영 방향에 대한 원론을 담고 있다.

권72∼75에는 각종 과거 또는 초계문신(抄啓文臣) 등의 과강(課講)에 정조가 친히 제시했던 책제(策題) 77편이 수록되었다. 이 책제들은 특정 주제에 대한 원론과 정조 스스로의 생각,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을 긴 문장으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권76∼77은 잡저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극기설」·「율곡연명(栗谷硏銘)」·「답주공서편집제신문목(答周公書編輯諸臣問目)」 등 정조 연간의 편찬 작업에 종사한 신하들에게 내린 글들이 수록되었다.

권78∼89는 순조의 어제로서, 권78은 시를 수록하였다. 절기 등 자연과 일상 생활을 읊은 것, 숙종·영조의 시에 차운한 것, 독서 내용에 대한 것, 정치 과정에서 읊은 것, 「천도(天道)」 등 관념적인 주제를 다룬 것 등이 있다.

그 이하는 문으로, 권79에는 「관경후원서(觀耕後苑序)」 등의 서와 당대에 중건한 창덕궁의 각 전에 붙인 기, 순조의 장인 박준원(朴準源)의 신도비명 등이 수록되었고, 권80에는 진향문·치제문 등이 실려 있다.

권81에는 홍경래(洪景來)의 난 당시 각 지방민·관찰사에게 내린 것을 비롯해 권농 등 일반적인 내용을 담은 윤음이, 권82∼83에는 교가 119편, 권84에는 당대 고위 관직자에게 내린 유(諭) 48편, 권85∼87에는 각종 소차(疏箚)에 대한 소비(疏批)가 124편 수록되어 있다.

권88에는 각종 주제에 대한 순조의 논설 19편이 실려 있는데, 「군도편(君道篇)」·「신도편(臣道篇)」·「설관편(設官篇)」 등이 여러 조목으로 구성되어 서술되어 있다. 권89에는 선대어제에 대한 찬, 자경문(自警文), 창덕궁 및 그 전각에 대한 명(銘), 무예(武藝)를 소재로 한 명, 상량문 등 31편이 수록되었다.

권90∼95는 익종의 어제이다. 권90∼93에는 547수의 시가 수록되었는데 자연의 조화와 궁중의 풍광을 읊은 것, 역대 임금이나 주희(朱熹)의 글에서 차운한 것, 경연관들에게 내린 것, 학(鶴)에서 천리경(千里鏡)·자명종(自鳴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를 읊은 것이 많으며, 악장 10편, 치사 11편, 사(詞) 3편 등이 있다.

권94에는 대리청정하라는 순조의 명령을 사양하는 상소, 시강원 관리들에게 내린 서(書), 각종 책에 붙인 서(序), 「서류소통신칙영지(庶類疏通伸飭令旨)」를 비롯해 대리청정 시기에 내려진 갖가지 영지(令旨) 등이 74편 수록되었다. 권95에는 비답·상량문·자경문·부(賦) 등이 56편 실려 있다.

권96∼100은 헌종의 어제이다. 권96은 시로, 자연이나 궁중생활·문방구 등 소품을 소재로 한 15수와 대왕대비의 생일에 바친 것 등 악장 6편, 치사 2편 등이 있다. 권97에는 『국조보감』 등에 붙인 서(序), 왕족 및 신하에 대한 친제문, 왕가에 대한 행록, 국정 및 신하들의 죽음에 접해 내린 교 등 87편이 실려 있다.

권98에는 이상황(李相璜)·이지연(李止淵) 등에게 내린 유(諭) 64편이, 권99에는 각종 상소에 대한 비답 71편이, 권100에는 비답과 낙선재 상량문 등, 대왕대비에게 바친 전(箋), 서희순(徐熹淳)에게 호를 지어 주면서 써준 서(序) 등이 70편 수록되었다.

권101∼104는 철종의 어제이다. 권101에는 농사·자연·주변소품·궁중생활을 소재로 한 시 53수와 김조순(金祖淳)신도비명, 김조순의 문집에 대한 서(序), 진향문·치제문 등의 문 35편이 실려 있다. 권102에는 교 95편, 권103에는 유(諭) 61편, 권104에는 비답·삼정구폐책제(三政救弊策題), 김수근(金洙根) 화상에 대한 찬(贊), 언행명(言行銘) 등 문 102편이 수록되었다.

규장각·장서각 등을 비롯한 여러 곳에 풍부히 소장되어 있다. 1924년 경성신문사 내의 열성어제출판소에서 뛰어난 시문을 추리고, 장조(莊祖)와 고종의 시문을 첨가한 뒤 한글 토를 붙여 간행한 바 있다.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규장각한국본도서해제』-집부(集部) 2-(서울대학교도서관,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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