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군 ()

대동여지도 중 전라북도 고창, 영광 부분
대동여지도 중 전라북도 고창, 영광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전라남도 북서해안에 위치한 군.
정의
전라남도 북서해안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장성군, 서쪽은 황해, 남쪽은 함평군, 북쪽은 전라북도 고창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5°59‘∼126°39’, 북위 35°10′∼35°26′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474.95㎢이고, 인구는 5만 6267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3개 읍, 8개 면, 292개 행정리(127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무령리에 있다.

자연환경

노령산맥이 해안으로 뻗으면서 동쪽으로 고성산(古城山, 546m)·태청산(太淸山, 593m)·장암산(場巖山, 487m) 등이 장성군과, 남쪽으로 불갑산(佛甲山, 516m)·모악산(母岳山, 348m)·군유산(君遊山, 403m) 등이 함평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서쪽으로는 봉화령(烽火嶺, 374m)·수리봉(351m) 등이 솟아 있다.

지질은 대부분 주라기의 대보화강암과 화강편마암계에 속하는 선캄브리아기의 변선퇴적암으로 구성되었다. 군의 중앙부는 대부분 해발 고도 100m 이하의 평야가 완만하고 넓은 구릉지가 대부분이다.

곳곳에 솟은 산지 사이를 불갑천(佛甲川)·구암천(九巖川)·와탄천(瓦灘川)·고령천(高靈川)·설매천(雪梅川) 등이 황해 칠산바다로 흐르면서 해안에 좁은 평야를 이룬다. 군내의 하천은 그 길이가 짧고 고도차가 완만하여 평소에는 유량이 적으나 우기에는 범람하여 수리 이용에 좋지 않은 편이다.

해안은 수심이 얕아 간석지가 넓게 발달하고 조수의 차가 커서 일찍부터 간석지를 제방으로 막아서 논으로 개발하였다. 해안선은 굴곡이 심한 리아스식 해안이다.

도서로는 안마도(鞍馬島)·송이도(松耳島)·낙월도(落月島) 등 유인도 11개와 무인도 51개가 있다.

기후는 북서계절풍의 영향으로 겨울철에 같은 위도상의 동해안지역보다 서늘하다. 연평균기온 13.9℃, 1월 평균기온 ·0.5℃, 8월 평균기온 26.5℃이며, 연강수량은 1,149㎜이며,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린다.

역사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유물·유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유물·유적은 백수읍·군남면·대마면·묘량면·불갑면 등지에 분포된 고인돌군과 간돌도끼가 있다. 마한시대의 여러 소국 가운데 막로국(莫盧國)의 위치를 이 지역에 비정하기도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백제의 영역에 편입된 뒤로는 무시이군(武尸伊郡)이라 불렸으며, 당나라가 백제를 멸한 뒤에 모지(牟支)로 개칭되었고 사반주(沙泮州)의 영현으로 되었다. 이 밖에 오늘날의 군남면지역에 아로현(阿老縣)이 설치되었다.

신라의 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무령군(武靈郡)으로 개칭되었고, 장사(長沙)·무송(茂松)·고창(高敞)의 3현을 관할하였다. 아로현은 갈도현(喝島縣)으로 고쳐졌고, 압해군(壓海郡)의 영현으로 되었다.

940년(태조 23)에 영광군(靈光郡)으로 개칭되었으며, 1018년(현종 9) 지방제도가 정비될 때 나주목 예하의 지사군이 되었다. 오성군(筽城郡) 또는 정주(靜州)라는 별칭도 있다.

예하에 압해군(壓海郡)·장성군(長城郡)과 삼계현(森溪縣)·육창현(陸昌縣)·해제현(海際縣)·모평현(牟平縣)·함풍현(咸豊縣)·임치현(臨淄縣)·장사현(長沙縣)·무송현(茂松縣) 등 2군 8현을 거느리고 있었다. 현종 때의 김심언(金審言)은 이 고장 출신으로 정치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1396년(태조 5) 현재의 위치로 읍터를 옮겼으며, 1423년(세종 5)에 읍성을 쌓았다. 1629년(인조 7)에 고을 사람 이극규(李克揆)의 역모사건으로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638년에 복구되었다. 1755년(영조 31)에 또 역모사건으로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764년 복구되는 곡절을 겪었다.

「상춘곡(賞春曲)」의 작자 정극인(丁克仁)과, 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그곳에서 성리학을 전수해 퇴계 이이의 유학을 널리 퍼뜨리고 『간양록(看羊錄)』을 저술하였던 강항(姜沆)이 이곳 출신이다. 1618년(광해군 10) 강항을 봉사하는 내산서원(內山書院)이 건립되었다.

1894년 동학운동 때 이곳은 그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 고창지방과 합하여 1,500명에 달하는 주민이 동학군에 가담했으며, 오하영(吳河泳)·오시영(吳時泳) 등이 지도하였다. 1895년전주부 영광군으로 개편되었다. 1896년 제도개편으로 전라도가 남·북도로 분리될 때, 전라남도에 속하게 되면서 일부 지역이 지도군과 무안군에 이관되었다.

1906년 조정룡(趙正龍)·김용구(金容球)·박경욱(朴京旭)·이순식(李淳植) 등의 의병장이 일본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진량면이 법성면으로 고쳐치고, 외동·내동·현내·삼남·삼북면 등이 장성군에 이관되었다. 근대의 인물로는 원불교의 창시자인 박중빈(朴重彬)이 있다.

1955년 7월 1일영광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63년위도면이 전라북도 부안군으로 이관되어 1읍 10면으로 개편되었다. 1980년 12월 1일백수면이, 1985년 10월 1일홍농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고, 1987년 1월 1일염산면 월흥리·반안리가 군남면에 편입되었고, 1997년 7월 28일군서면 보라리의 일부가 영광읍 학정리에 편입되었다.

유물·유적

홍농읍에 영광성산리지석묘군(전라남도 기념물, 1988년 지정), 백수읍 천정리·천마리 등 군내에는 수백 기의 고인돌과 청동기시대 유적이 있다. 군남면 설매리에 삼족토기 등 백제시대 유물과 법성면 법성리에 고분과 토성지가 있다.

산성으로는 영광읍성·천정산성(天井山城)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묘량면에 영광신천리삼층석탑(보물, 1969년 지정), 불갑면 모악리에 불갑사대웅전(보물, 1985년 지정)·불갑사대웅전삼신불좌상(보물, 2003년 지정)·사천왕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7년 지정)·사천왕상복장불서(전라남도 유형문화재, 2000년 지정)·팔상전·명부전·진각국사비(眞覺國師碑)가 있다. 2006년에 259점이 보물로 지정된 영광불갑사불복장전적(보물, 2006년 지정)이 있다. 영광읍 월평리에 삼층석탑과 이흥사지(利興寺址) 부도·석등 등이 있다. 군남면 용암리에 영광연흥사소장묘법연화경(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90년 지정)·목조삼세여래좌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2002년 지정)이 있다. 현존하는 사찰로는 불갑사·영흥사(永興寺)·원각사(圓覺寺)·은선암(隱仙庵)·금정암(金井庵)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영광읍 교촌리에 고려 공민왕 때 창건되어 1582년(선조 15)에 중수된 영광향교(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가 있으며, 불갑면 쌍운리에 내산서원(전라남도 기념물, 1977년 지정)이 있다. 이 밖에도 군남면 도장리에 장산서원(長山書院), 묘량면 운당리에 이천우(李天祐)를 추모하기 위해 1616년(광해군 8)에 설립된 묘장서원(畝長書院)이 있다.

사당으로는 김심언(金瀋言)을 추모한 영광읍 월평리의 기천사(岐川祠), 대마면 원흥리의 영광정렬각(전라남도 기념물, 1976년 지정), 정유재란 때 전사소식을 듣고 바다에 투신 자살한 9열부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백수읍 대신리에 영광정유재란열부순절지(전라남도 기념물, 1976년 지정), 군남면 동간리에 서강사, 대마면 남산리에 남강사, 백수읍 지산리에 지산사, 영광읍 송림리에 송림사 등이 있다.

조선 후기의 고가로 군남면 동간리의 영광 매간당 고택(중요민속자료, 1998년 지정)가 있다. 등록 건축물로는 영광 법성리 일본식 여관(등록문화재, 2004년 지정)이 있다.

문헌으로는 묘량면 영양리에 이천우영정 및 이응도목판(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7년 지정)이 있다.

영광불갑면의 참식나무자생북한지대(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 낙월면의 영광칠산도괭이갈매기노랑부리백조 및 저어새번식지(천연기념물, 1997년 지정) 등이 있다. 영광 법성진 숲쟁이가 2007년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영광읍에는 영광단주리당간지주(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7년 지정)가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는 영광향교·내산서원·묘장서원·무령서원(武靈書院)·계송서원(桂松書院)이 있다. 영광읍 교촌리에 있는 영광향교는 고려 공민왕 때 창건되었고 그 뒤 1582년 본관이 중창되었다. 현재 만화루·대성전·명륜당 등이 남아 있다.

정유재란 때 신응순(辛應純)·정응벽(丁應壁) 등이 영광향교의 위패와 제기(祭器)·제복(祭服)을 배에 싣고 안마도로 옮겨 보존함으로써, 뒤에 이웃 고을 향교에서 제기·제복을 만들 때 본보기가 되었다. 불갑면 쌍운리 내산에 있는 내산서원은 인조 때 강항을 추모하기 위해 순룡리에 설립된 것으로 1868년(고종 5) 훼철되었다가 광복 후 이건되었다.

이곳에는 강항의 저서인 『간양록』이 보관되어 있다. 묘량면 운당리에 있는 묘장서원은 1616년 이천우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설립된 것이다. 영광읍 월평리의 무령서원은 1748년(영조 24) 이 고장 유림의 반론으로 김심언·김해(金該)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계송리에는 계송서원이 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영광초등학교의 전신인 영광보통학교가 1910년영광읍에서 개교하였으며, 같은 해 법성포초등학교의 전신인 사립 법성보통학교가 법성포에서 개교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1921년에 군남초등학교가, 1922년에 대마초등학교가, 1923년에 백수초등학교가, 1927년에 홍농초등학교가, 1928년에 군서초등학교가 각각 개교하였다. 1921년 4월에 영광유아원이 전라남도에서 두 번째로 창설되었다. 1951년에 군남중학교·영광중학교·법성중학교와 법성상업학교가 각각 개교하였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4개교, 중학교 10개교, 고등학교 6개교, 영산선학대학교가 있다.

영광읍에 공공도서관이 2개, 전시관이 3개, 문화원이 1개 있다. 영광문화원에서는 매년 옥당제(玉堂祭)를 주관하고 있다. 매년 10월 15일에 열리는 영광군민의 날에는 농악·줄다리기·그네뛰기·산신제·노래자랑·체육대회 등 각종 행사를 하고 있다. 이 군의 전승놀이로 벌막놀이가 있는데, 소금을 구어내는 모습을 그린 이 놀이는 1982년에 개최된 제14회 남도문화제에 선보였다. 단오 무렵에는 1967년부터 계속되어온 법성포단오제가 열린다. 매년 9월에는 영광 불갑사 상사화 축제가 열린다.

백수읍 길룡리는 원불교 교조 박중빈의 탄생지로서, 교도들의 교육수련을 위한 선원(禪院)이 있고, 1982년 개교한 영산성지학교도 있다.

민속

이 고장 법성포의 숲쟁이마을에서는 1940년경까지 해마다 5월에 전국적 규모의 민속행사인 ‘단오제’와 ‘전국민속놀이 기예경창대회’가 열렸다. 이 행사를 통해 각종 민속놀이가 거행되었기 때문에 영광군에는 씨름·그네뛰기·줄다리기·널뛰기·농악·강강술래·윷놀이·산놀이·소사리(소 흉내내기 놀이)·성밟기·칠석욕정(七夕浴井)놀이·봉화놀이·석전·길쌈놀이·따부질놀이·해변놀이·칠산어장놀이·지게싸움놀이·판수놀이·활쏘기·잡색놀이 등의 다양한 민속놀이가 전해오고 있다.

그 중 칠산어장놀이는 출어할 때 풍어를 비는 놀이인데,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먼저 백수읍에 있는 구수산 기슭에서 인형으로 만든 선수각시를 모시고 풍어를 기원하는 수신제를 거행한다. 제가 끝나면 배 위에 오색기를 꽂고 농악에 맞추어 한바탕 흥겹게 논 다음 「뱃노래」를 부르며 어장으로 향하게 된다. 이 밖에도 매년 10월 5일 군민의 날 전야제 행사로 줄다리기가 성대하게 거행된다.

군남면 반안리 안수마을의 당산제와 영광읍 무령리 관람산의 산신제가 유명하다. 안수마을의 당산제는 매년 정월 보름에 거행되는데, 당산할아버지·당산할머니 순으로 제가 진행된다. 당산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신체(神體)가 당산목이 아니라 화강암을 깎아 만든 것이라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이곳에서는 당산제를 지냄으로써 호열자(콜레라) 등의 질병을 막을 수 있고, 아들 없는 사람이 제 지내기 전날 밤 정성껏 제물을 마련하여 당산할머니에게 기원하면 3년 후 득남할 수 있다고 믿는다.

관람산의 산신제도 매년 정월 보름날 밤에 거행된다. 당일 해가 저물면 제관은 혼자 제물을 가지고 산신당에 가서, 그곳에서 떡을 찌고 밥을 지어 제를 지낸 뒤 새벽닭이 운 뒤에 하산한다. 이때 마을 사람이 아이를 낳거나 상을 당하면 2월 초하루로 산신제를 연기한다.

설화·민요

이 고장에는 지형변화 내력담·지명유래담과 역사적 인물전설 등이 전한다. 서쪽 칠산(七山)바다는 원래 육지였다는 전설이 있다.

옛날 칠산고을에 마음씨 좋은 서씨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남루한 차림의 나그네를 정성껏 대접하였더니, 이튿날 아침 나그네는 “앞으로 저 산 위의 돌부처 귀에서 피가 흐르면, 이 고을은 바다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이에 서씨는 날마다 산에 올라 돌부처를 살펴보곤 했는데, 한 백정이 그를 놀리려고 돌부처에 일부러 짐승의 피를 발라 놓고는, 가족들을 데리고 황급히 산 위로 피하는 서씨를 마을사람들과 함께 비웃었다. 그러자 갑자기 바닷물이 밀려 들어와 칠산고을은 순식간에 바다가 되고 말았다. 이때 서씨가 재앙을 피해 살아남은 곳이 바로 염산면 야월리 가음산(歌音山)이라고 한다.

곧올재[古道峙]의 지명유래담은 마한 시절 성진이라는 부족국가에 살던 도손이라는 젊은 부부의 이야기다. 이웃 부족국가가 쳐들어오자, 도손은 만삭의 아내를 업고 태청산(太淸山)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다. 아내는 이 고개를 넘는 도중 그만 아이를 낳고 말았다. 이때 도손은 산고에 쓸 물건을 구하기 위해 “곧 올께”라는 말을 남기고 마을로 내려오다가 적에게 잡혀 죽고, 그의 아내 역시 남편을 기다리다 숨지고 말았다. ‘곧올재’라는 고개 명칭은 이때 도손이 남긴 “곧 올께”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 낙월면 임병리에 있는 「각시섬전설」은, 어느 젊은 부인이 병석에 누운 남편을 위해 선약(仙藥)을 구하러 불귀도(不歸島)라는 이 섬에 왔다가 독사에게 물려 구렁이가 되었다. 남편이 불귀도를 바라보며 아내(각시)를 애타게 기다리다 죽어갔기 때문에 각시섬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밖에 고려 때 수가랑이 원나라 후궁으로 가지 않기 위하여 콩밭으로 달아나다 낳은 아기의 「전씨(田氏) 시조설화」와, 선조 때 강항(姜沆)이 『맹자』를 한번 보고 모두 외워버렸다는 데에서 생긴 「맹자정전설(孟子亭傳說)」, 고려 인종 때의 이자겸(李資謙)이 이곳에 귀양와서 결코 비굴하게 지내지 않음으로써 영광조기를 굴비(屈非)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화가 전하고 있다.

이 고장의 대표적인 민요로 「물레타령」·「베틀노래」·「장타령」등이 있다. 그 중 「물레타령」·「베틀노래」는 1974년 제6회 남도문화제에서 최고상을 수상하였다.

먼저 「물레타령」을 보면, “(1절)물레 소리는 방안에서 돌고/귀뚜라미 소리는 정제에서 운다/(후렴)물레야 가락아 애 뱅뱅 돌아라/남의 집 귀동자 밤 이슬 맞는다//(2절)물레 물레 병이 났네/물레 병에는 참깨 기름이 약일세/(후렴)//(3절)물레 물레 병이 났다네/물레 병은 괴머리에서 났다네/(후렴)//(4절)염제 신농은 농사를 내시고·문익점은 물레를 내셨네/(후렴)//(5절)불아 불아 호롱불아/가물 가물 꺼지지 말어라/(후렴)”이다.

「베틀노래」는 “(1절)하늘에다 베틀 놓고/구름 잡어 잉애 걸고/오동나무 북에다가/대추나무 보두집에/얼그덩 절그덩 짜니라니/뒷집망구 불싸러 와/그 베 짜서 뭣할란가/우리 오빠 장가갈 때/우리 형님 시집올 때/가마 후장 두를라네/(후렴) 얼그덩 절그덩 잘도 짠다/얼그덩 절그덩 잘도 짠다//(2절)그 남지기 뭣할란가/우리 샌님 장가 올 때/청포 도포 지을라네/(후렴)//(3절)그 남지기 뭣할란가/요새 나도 시집 갈 때/농지기를 해보는데/꽃보선도 해서 넣고/치마 저고리 해볼라네/(후렴)//(4절)신랑이사 좋다마는/신부는 옴두꺼비/그 말 마소 그 말 마소/땅 위에도 옴두꺼비/지하에도 옴두꺼비/(후렴)//(5절)비단에도 갈이 가고/대단에도 얼이 가고 /냉수에도 이끼 찌고/숙림(숭늉)에도 불티 찐디/사람이라 생겨나서/한숭인들 없을손가/(후렴)//(6절)샌님 샌님 우리 샌님/병풍이나 열어보소/병풍 안을 넘어 보니/정제문이 훤하구나/닭아 닭아 우지 마라/날아 날아 새지 마라/(후렴)”이다.

「장타령」은 “사흘 여드레 법성장/조금이라 못보고//넘어다 봤다 포천장/고개 아파서 못보고//왔다 갔다 개갑장/다리 아파서 못보고//오르랑 내리랑 밀넘어장/정신 없어 못보고//울긋 불긋 황해장/눈꼴 시어서 못보고//코 풀었다 흥덕장/미끄러워서 못보고//네미 붙고 담양장/상놈장이라 못보고//파싹 파싹 담배전/울긋 불긋 황해전/얼그럭 더그럭 옹기전”이다.

이 밖에도 「농부가」·「여탄가(女嘆歌)」·「콩밭노래」·「보선노래」·「각설이타령」·「뱃노래」·「금가락지노래」등이 있다.

산업·교통

서해안에 위치하여 반농반어(半農半漁)의 가구가 많으며, 총 경지면적은 1만 6861ha 중 논이 1만 2071ha, 밭이 4,790ha로 논이 많다. 농가 인구는 2008년 현재 1만 7056명이고,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밀·콩 등이며, 특용 작물로 잎담배·인삼 등이 있다.

평야에 농업 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로 불갑면의 불갑저수지와 영광읍 덕호리의 칠성저수지(七星貯水池) 등이 있다. 불갑저수지는 불갑면의 녹산리·금계리·방마리와 영광읍의 학정리, 묘량면의 신천리에 걸친 ㄷ자 모양의 호남 최대의 저수지로, 불갑산에서 흘러내리는 삼학천(三鶴川)을 저수한 것으로 1926년에 완공되었다. 이 물은 불갑면·군서면·군남면·염산면·백수읍 등 5개 읍·면에 관개용수를 제공하고 있다.

이 밖에도 장동(莊洞)·신흥(新興)·백동(柏洞)·주만(朱萬) 등의 저수지가 있다. 축산으로 소·돼지·염소·면양·사슴·산양 등을 기르며, 양봉도 행해진다. 광산물로는 규사·고령토·장석 등이 있는데, 규사는 낙월면에 상당량 매장되어 있다. 최근 홍농읍 금정산 북부에 원자력발전소가 건립되었다.

수산업으로는 어업과 염전업 외에도 양식업이 성행하여 굴·김·백합 양식을 많이 한다. 주요 수산물은 조기·낙지·새우·해조류·김 등이다. 칠산 앞 바다에서 잡히는 조기를 가공하여 만든 영광굴비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영광굴비는 칠산바다에서 잡히는 산란 직전의 조기를 소금으로 간을 하여 말린 것으로 동중국해역에서 월동한 조기떼가 산란하기 위해 연평도 근해까지 북상하는데, 법성포 앞 칠산바다에서는 4∼5월경 특히 곡우사리 때 알이 차고 맛이 좋은 산란 직전의 조기를 잡을 수 있다. 고려 인종 때 처음으로 진상되었으며, 명·청나라에까지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일설로는 법성포에 귀양온 이자겸이 비굴하게 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그 맛이 변하지 않는 영광굴비를 진상하면서 ‘비굴’의 글자를 바꾸어 ‘굴비’라고 하였다고 한다. 최근에는 어획량이 적어서, 영광굴비의 전통은 법성포의 약 40가구에 의해 겨우 명맥만이 유지되고 있다. 고급요리에 쓰이는 보리새우도 많이 잡힌다.

상업 활동으로는 조선시대에는 법성포에 인근 15개 군에서 거둔 세곡(稅穀)을 저장했던 조창(漕倉)이 있어서 거래도 활발하였다. 한말에는 읍내장(邑內場)·조산장(造山場)·원산장(元山場)이 열렸고, 일제 강점기에는 영광읍 영광장이 1·6일에, 법성면 법성장이 3·8일에, 군남면 포천장이 2·7일에, 불갑면 입석장이 4·9일에 열렸다.

광복 이후에는 백수면에 백수장이, 염산면에 염산장이 새로 개장된 반면, 불갑면의 입석장은 폐시되었다. 정기시장의 개장일도 약간의 변화가 있어 법성장은 5·10일에, 백수장은 4·9일에, 염산장은 3·8일에 열리고 있으며, 상설시장은 영광읍에 한 군데 있다. 조기잡이가 성업 중일 때에는 조기잡이 철인 4월이 되면 법성포에 수많은 고깃배가 모여 성시를 이루었다. 1970년 이후 조기어획량이 줄어들면서 이곳의 상업활동도 쇠퇴하였다.

교통은 철도는 없고, 군 중앙부를 법성·영광·광주를 잇는 도로와 함평·영광·고창을 잇는 도로가 통과하고 있어 편리한 편이다. 군내의 중앙을 남북으로 서해안고속도로가 통하고 있어서 서울과의 교통이 더욱 편리해졌다.

관광

불갑산의 수려한 산수와 서해안의 바다가 곳곳에서 아름다운 절경을 이룬 이곳의 주요 관광지로는 동남쪽의 불갑산일대와 백수읍의 원불교성지, 서북쪽의 금정산(金井山) 일대와 홍농읍의 계마리해수욕장을 들 수 있다.

서해를 굽어보고 있는 불갑산은 산세가 평이하고 아름다우며, 기슭에 아담한 고찰인 불갑사와 용천사가 있다. 백수읍에는 원불교의 창시자가 수도하였던 원불교성지가 있다. 이곳에는 대종사의 생가, 기도터인 삼밭재, 노루목, 정관평성전 등 여러 유적이 있다.

불갑면 쌍운리에 있는 용계사내산서원에는 조선 중기 때의 성리학자인 강항의 사당이 있다. 그는 정유재란 때에 의병을 모아 왜병과 싸우다가 포로의 몸이 되어 일본의 오사카로 끌려가게 되었다. 당시 그는 일본에서 성리학을 가르쳐주었고, 일본의 지리와 군사 시설에 관한 저서로 『간양록』을 저술하였다. 서쪽 해안도로를 따라 서해안의 경관인 염전지대가 펼쳐지며, 계속 북상하면 영광굴비의 본고장인 법성포항에 이른다.

계마리해수욕장은 금정산을 배경으로 깨끗한 백사장과 울창한 송림이 장관이다. 일명 가매미해수욕장 또는 가마미해수욕장이라 부르며, 1940년에 개설되었으나 8·15광복과 더불어 황폐화되어 1953년에 다시 개장되었다. 4㎞에 이르는 깨끗한 모래사장 주변에 200여 그루의 울창한 노송이 우거져 있고, 밀물과 썰물의 차가 심하지 않고 경사가 완만하여 호남 3대 해수욕장의 하나로 손꼽힌다.

그러나 홍농읍의 원자력발전소에서 방류되는 온수의 영향으로 계마리해수욕장을 찾는 피서객의 수는 감소하고 있다. 금정산 기슭에 있는 금정암에서는 서산낙조(西山落照)의 절경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관광지 주변에는 숙박시설과 음식점·주차장·야영장 등이 갖추어져 있다.

법성포단오제는 강릉단오제와 더불어 지금까지 전해오는 중요한 전승행사로서 매년 단오 때에 열린다. 불갑면의 우도농악은 1987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읍·면
  1. 백수읍(白岫邑)

군의 서부에 위치한 읍. 면적 86.92㎦, 인구 5,269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천마리이다. 본래 영광군 지역으로 금마면이라 하여 대초리·대야리 등 3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수면(九水面)의 구미리 등 15개 리와 봉산면의 상둔리 등 57개 리, 관산면의 내황리, 서부면의 세미리 일부가 병합되어 백수면이라 불렸고 천마리·대신리 등 1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80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중앙부에 봉화령·수리봉 등의 잔구(殘丘)를 중심으로 북쪽은 구릉성 산지이고, 남쪽은 백수평야가 전개되며, 동쪽은 와탄천이 법성면과 경계를 이루며 흐른다. 서쪽 해안의 길이는 26㎞이며, 넓은 간석지를 개간되어 790ha의 간척농지와 225ha의 염전이 조성되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땅콩·잎담배 등이며, 양잠·양계도 한다. 뱀장어 어획이 많아 두 군데의 뱀장어양식장에서 연간 10.4t의 뱀장어가 생산되고 있으며, 여러 군데의 염전에서 연간 28만 가마의 소금이 생산된다.

교통은 영광읍과 해안을 잇는 도로가 동서로 뻗어 있어서 비교적 편리하다. 19㎞에 이르는 해안도로는 절경과 낙조로 유명하다. 길룡리는 원불교의 개창자인 박중빈이 탄생한 원불교의 발상지이다. 문화유적은 천마리에 지석묘, 대신리에 팔렬각비(八烈閣碑)·열부순절비 및 순절지(지방기념물, 1976년 지정), 천정리에 천정산성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 대학 1개 교가 있다.

천마(川馬)·대신(大新)·구수(九岫)·길룡(吉龍)·천정(天定)·장산(莊山)·논산(論山)·학산(學山)·죽사(竹寺)·양성(良城)·대전(大田)·홍곡(虹谷)·약수(藥水)·지산(芝山)·상사(上沙)·하사(下沙)·백암(栢巖) 등 17개 리가 있다.

  1. 영광읍(靈光邑)

군의 중앙에 위치한 읍. 면적 46.73㎢, 인구 2만 2117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무령리이다. 본래 영광군 지역으로 군청의 동쪽이므로 동부면이라 하여 명곡리·교촌리 등 3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도내면(道內面)의 고성리·송정리 등 13개 리와 묘량면의 흥곡리·장등리의 일부, 진량면의 서당촌 일부와 서부면의 무곡리·옹정리·대신리·궁산리 일부와 전라북도 무장군 와공면 지음리 일부가 병합되어 영광면이라 불렸고 무령 등 1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55년에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3년군서면의 녹사리·학정리·송정리·신하리 등 4개 리가 편입되어 19개 리를 관할하였다.

남부의 군서면과 묘량면의 경계에 물퇴봉(257m)·노인봉 등 낮은 산지가 약간 있을 뿐 대부분이 평야지대이다. 영광천이 북쪽으로 흐르다가 묘량천과 합류한 뒤 서쪽으로 흐르며, 대산천(大山川)과 합류하여 와탄천을 이루어 황해로 흘러든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잎담배 등이다.

교통은 법성·영광·광주를 잇는 국도와 함평·영광·전라북도 고창을 잇는 국도가 교차하고, 지방도와 군도가 연결되어 있어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으로는 무령리에 읍성터, 단주리에 당간지주, 백학리에 원각사·영광읍성, 교촌리에 영광향교, 월평리에 무령서원·삼층석탑·도내사, 입석리에 신호준가옥·우도농악·도동리홍교와석장승 등이 있고, 휴식공간으로 우산공원(牛山公園)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4개 교, 중학교 3개 교, 고등학교 3개 교가 있다.

무령(武靈)·백학(白鶴)·남천(南川)·도동(道東)·교촌(校村)·연성(連城)·월평(月坪)·단주(丹朱)·덕호(德湖)·신월(新月)·양평(良坪)·와룡(臥龍)·계송(桂松)·입석(立石)·우평(牛坪)·녹사(綠沙)·학정(鶴丁)·신하(新河)·송림(松林) 등 19개 리가 있다.

  1. 홍농읍(弘農邑)

군의 북부에 위치한 읍. 면적 38.08㎢, 인구 7,654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상하리이다. 본래 영광군에 속한 홍농부곡(弘農部曲)인데, 조선시대에 면이 되어 정동리·황곡리 등 5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전라북도 무장군 하리면의 용대리 일부와 동음치면의 성과리 일부가 병합되었다. 1985년홍농읍으로 승격되었다. 홍농이라는 지명은 조선왕조 때 이석우(李錫祐)가 동서로 긴 반도인 이곳의 남북 해변이 훗날 육지가 되어 큰 농사를 짓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금정산이 서쪽 해안 가까이에 솟아 있을 뿐 대부분이 평지이며, 남쪽에는 구암천이 법성면과 경계를 이루면서 흐른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이며, 참깨를 비롯한 특용작물의 생산은 군내에서 최고이다. 목축으로 산양과 돼지 사육이 성하고, 금정산 북쪽에 원자력발전소가 있다.

교통은 법성면과 전라북도 고창을 잇는 도로가 금정산 주위의 취락을 연결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성산리에 지석묘군이 있다. 그리고 계마리에 해수욕장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상하(上下)·칠곡(七谷)·계마(桂馬)·성산(城山)·진덕(眞德)·월암(月巖)·가곡(可谷)·단덕(丹德)·신석(新石) 등 9개 리가 있다.

  1. 군남면(郡南面)

군의 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48.80㎢, 인구 2,58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포천리이다. 본래 육창현(陸昌縣)지역인데, 고려 때 영광군에 편입되었고, 조선조 때 육창면이 되어 봉기리·대화리 등 4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산면의 12개 리와 외간면의 16개 리, 남죽면의 마읍리 일부, 함평균 신광면의 보전리 일부, 손불면의 장재리·완정리의 일부가 병합되어 군남면이 되었다.

남쪽으로 군유산·월암산(月巖山, 338m)이 솟아 함평군과 경계하고, 동쪽으로 삼각산이 솟아 불갑면과 경계한다. 군남천이 면의 중앙을 통과하여 북쪽으로 흘러 군서면과 경계하여 흐르는 반월천(半月川)과 합류하고, 염산면을 지나 황해로 흐른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등이었으나, 최근에는 태양초고추·찹쌀보리·방울토마토 등이 많이 재배되고 있다.

교통은 영광읍∼염산면간의 군도가 지난다. 문화유적은 동간리에 입석이 있고, 1998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영광 매간당 고택과 삼효문(三孝門)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포천(浦川)·동간(東澗)·도장(道長)·백양(白羊)·용암(龍巖)·남창(南昌)·동월(東月)·설매(雪梅)·양덕(暘德)·대덕(大德)·월흥(月興)·반안(盤安) 등 12개 리가 있다.

  1. 군서면(郡西面)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25.91㎢, 인구 2,54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마읍리이다. 본래 영광군 지역으로 영광읍내의 서쪽이 되므로 서부면이라 하여 두목·내남 등 2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죽면의 20개 리와 관산면(官山面)의 40개 리, 구수면의 하둔리 일부와 동부면의 언고리 일부, 불갑면의 회화리 일부와 금마면의 봉선리·학동리·하대리·죽산리 등의 일부가 병합되어 군서면이 되었다.

동쪽에 북종산(北鍾山), 서쪽에 덕산(德山, 118m) 등 낮은 산이 있을 뿐, 높이 50m 이하의 비교적 낮은 평지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잎담배·딸기 등이며, 목축업과 누에치기도 한다. 공업으로 적벽돌공장이 있고, 가내수공업으로 죽세품이 생산된다.

교통은 영광·함평·영암을 잇는 국도가 있어 편리하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마읍(馬邑)·보라(甫羅)·매산(梅山)·남계(南溪)·만곡(晩谷)·가사(加沙)·남죽(南竹)·만금(萬金)·송학(松鶴)·덕산(德山) 등 10개 리가 있다.

  1. 낙월면(落月面)

군의 서해 해역에 위치한 면. 면적 12.01㎢, 인구 61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상낙월리이다. 본래 영광군 염산면의 지역으로 진다리섬 또는 진월도·낙월도라 했는데, 1895년(고종 32)에 지도군에 편입되어 낙월면이라 불렸고, 상낙월도 등 1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영광군에 편입되어 1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62년만지리·작도리가 신안군 임자면으로 편입되었다. 유인도 11개, 무인도 41개이다.

주요 농산물은 보리·콩 등의 잡곡이며, 안마도에서는 소의 사육이 많다. 수산물로는 새우·멸치·꽃게 등을 들 수 있다. 도자기의 원료인 규석은 1억t 가량 매장되어 있어 연간 3,000t을 수출하고 있다.

교통은 상낙월도·하낙월도·목포·안마도·법성포 사이에 정기 여객선이 운행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분교 2개 교)가 있다. 중학교 분교 1개 교가 있다.

상낙월(上落月)·하낙월(下落月)·임병(壬丙)·송이(松耳)·각이(角耳)·월촌(月村)·영외(嶺外)·신기(新基)·오도(梧島)·죽도(竹島)·석만(石蔓) 등 11개 리가 있다.

  1. 대마면(大馬面)

군의 동단에 위치한 면. 면적 35.03㎢, 인구 1,79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월산리이다. 본래 영광군 지역으로 대안면이라 하여 세평리·섬암리 등 21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촌면의 33개 리와 도내면의 우평리, 묘장면의 창동리, 전라북도 무장군 장자산면의 자석리, 춘산리 일부가 편입되고 대안면과 마촌면의 이름을 따서 대마면이 되었다.

동쪽으로 노령산맥이 뻗어내려 장성군과 경계를 이루고, 고성산(546m)·태청산(593m)·월랑산(月朗山, 458m) 등이 솟아 있어 서쪽으로 갈수록 지형은 점차 낮아진다. 면의 중앙을 남산제(南山堤)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여령천(麗靈川)에 합류하여 전라북도와 경계를 이루며 흐른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고추·잎담배·사과·감·딸기 등이다.

교통은 면의 동북부의 고성산과 월랑산 사이의 속칭 게재를 통해 장성군과 전라북도를 잇는 지방도가 있다. 문화유적은 원흥리에 정렬각이 있다. 동족마을로 복평리에 전주이씨, 원흥리에 상산김씨(商山金氏)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월산(月山)·성산(城山)·홍교(洪橋)·복평(福坪)·남산(南山)·원흥(元興)·화평(禾坪)·송죽(松竹) 등 8개 리가 있다.

  1. 묘량면(畝良面)

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44.72㎢, 인구 1,92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영양리이다. 본래 영광군 지역으로 묘장면의 한시리·산적리 등 35개 리와 마촌면의 용동리 일부, 서부면의 외2남리 일부, 함평군 월야면의 연정리 등 5개 리와 해보면의 대수리가 편입되어 묘장면과 황량면의 이름을 따서 묘량면이 되었고, 군의 동쪽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남부에는 불갑산(516m) 줄기가 험준하고 동부에는 장암산(482m)과 월암산(月巖山, 351m)이 솟아 있어서, 묘량천이 흐르는 덕흥리·운당리 일대의 북부 분지와 삼학천이 흐르는 남부 분지를 제외하면 산지지형이다. 경지 면적은 12.2㎢이고,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참깨·고추 등이다.

교통은 법성·영광·광주를 잇는 국도가 면의 남서부를 지나고 있다. 문화유적은 신천리에 삼층석탑(보물, 1969년 지정), 영양리에 이규헌가옥·이천우영정및이응도목판(문화재자료, 1987년 지정), 운당리에 묘장영당(문화재자료, 2004년 지정)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영양(嶺陽)·덕흥(德興)·운당(雲堂)·삼효(三孝)·신천(新川)·삼학(三鶴)·월암(月巖)·연암(連巖) 등 8개 리가 있다.

  1. 법성면(法聖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34.77㎢, 인구 5,89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법성리이다. 본래 영광군에 속한 진개부곡(陳介部曲)인데, 조선조 때 진량면이라 하여 검산리·중리 등 5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도내면의 주록리·와진리의 일부가 편입되고 법성포의 이름을 따서 법성면이 되었다.

대덕산(大德山, 240m)·인의산(仁義山, 157m) 등 몇 개의 낮은 산들을 제외하고는 평지이며, 북쪽으로 구암천이 흘러 전라북도와 경계를 이루고 남쪽으로 와탄천이 영광읍과 백수읍의 경계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참깨 등이다. 맛이 좋기로 유명한 영광굴비의 본고장으로 유명하나 어획량이 해마다 줄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굴비철이면 굴비를 말리는 덕이 포구 안에 가득하다. 아랑주라는 전통소주가 유명하며 매년 단오에는 성대한 단오제가 열리고 있다. 법성리의 느티나무군, 불교 최초 도래지인 좌우두 등이 유명하다.

교통은 법성·영광·광주를 잇는 국도가 있어 편리하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법성(法聖)·진내(鎭內)·대덕(大德)·덕흥(德興)·용성(龍城)·용덕(用德)·삼당(三堂)·입암(笠巖)·신장(新庄)·화천(化千)·월산(月山) 등 11개 리가 있다.

  1. 불갑면(佛甲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36.97㎢, 인구 1,44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안맹리이다. 본래 영광군 지역으로 불갑사의 이름을 따서 불갑면이라 불렸고 황산리·차반리 등 5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부면의 대천리 일부와 외간면의 구평리·장고리의 일부 지역이 병합되었다.

남동쪽에 불갑산·모악산이 솟아 함평군과 경계를 짓고, 서쪽에는 삼각산(三角山, 362m) 등이 있다. 북쪽에는 불갑저수지가 있어서 모악산과 불갑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저장하여 주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밤 등이고, 산지에서는 홍화와 밤이 재배된다.

교통은 함평·영광·전라북도 고창을 연결하는 국도가 면의 서부를 남북으로 지나고 있다. 문화유적은 쌍운리에 수은 강항을 배향한 내산서원(지방기념물, 1977년 지정), 모악리에 불갑사 대웅전이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이곳이 자생 북한계인 참식나무가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방마리에 진주강씨, 부춘리에 영광정씨(靈光丁氏) 동족마을이 있다. 매년 9월에는 상사화축제가 열린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안맹(顔孟)·순룡(順龍)·녹산(鹿山)·금계(金鷄)·부춘(富春)·생곡(生谷)·응봉(鷹峰)·모악(母岳)·자비(自秘)·방마(放馬)·건무(建武)·우곡(牛谷)·쌍운(雙雲) 등 13개 리가 있다.

  1. 염산면(鹽山面)

군의 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65.01㎢, 인구 4,420명(2015년 현재). 면소재지는 봉남리이다. 본래 영광군 지역으로 소금을 굽는 염소(鹽所)가 있어서 염소면이라 하여, 창우리·당우리 등 1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산면의 대안리·안수리 등 26개 리와 마산면의 동고개·석우·시목정리의 일부가 병합되고, 염소면과 원산면의 이름을 따서 염산면이 되었다. 1983년군남면의 오동리·옥슬리가 편입되었다.

산지로는 비교적 낮은 설매산(雪梅山, 200m)·봉덕산(鳳德山, 296m)·가음산(歌音山, 204m) 등이 있을 뿐이며, 해안 일대에 평야와 간척지가 펼쳐져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등이며, 김양식이 활발하고 옥슬리·두우리와 야월리 일대에 염전이 많다.

교통은 해안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해상 교통의 발달은 미약하다. 함평∼영광간을 잇는 도로가 면의 북부를 동서로 뻗어 영광읍에서 함평·영광·전라북도 고창을 잇는 국도와 연결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종교단체로는 개신교 12개소, 천주교 1개소, 원불교 1개소가 있다.

봉남(奉南)·축동(丑東)·상계(上溪)·신성(新星)·송암(松巖)·야월(野月)·두우(斗牛)·오동(梧洞)·옥슬(玉瑟) 등 9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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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명요람』(건설부국입지리원, 1983)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83)
『신호남가』(광주일보, 1982)
『신팔도기』(동아일보, 1978)
영광군(www.yeonggwang.go.kr)
영광교육청(www.jnyged.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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