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금계리 고분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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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금계리 고분군
영암 금계리 고분군
고대사
유적
문화재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집터와 움무덤 · 독무덤 관련 복합유적. 시도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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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집터와 움무덤 · 독무덤 관련 복합유적. 시도기념물.
개설

1992년 11월 30일에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지방도 819호선 확·포장공사로 인해 2001년목포대학교박물관이 발굴조사하여 집자리〔住居址〕 12기와 그 밖에 철기시대의 도랑〔周溝〕 25기, 움무덤〔土壙墓〕 5기, 독널무덤〔甕棺墓〕 11기 등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저평한 구릉지대에 조성되어 있는데 말단부에는 독천-성전 간을 잇는 구 국도 2호선 도로가 지나고 있다. 동쪽으로는 ‘솔대골’로 불리는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으며, 남쪽은 영산강으로 유입되는 망월천(계읍내)이 흐른다. 유적 바로 맞은편에는 미암면 선황리 유적이 있다.

내용

집자리는 구릉 사면을 따라 남북방향으로 길게 늘어서듯 배치되어 있는데, 후대 도랑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대부분 파괴된 상태로 노출되었다. 송국리형(松菊里型)으로 평면형태가 원형인 것 2기와 방형인 것 10기로 구분된다. 바닥 중앙에 타원형구덩이〔娥圓形竪穴〕와 그 양단 내부에 1개씩의 기둥구멍〔柱穴〕이 있다. 이 외에도 기둥구멍이 타원형구덩이를 중심으로 그 외곽의 대칭되는 곳에 있는 것과 벽체(壁體)와 관련된 것이 있다. 특히 5호와 8호는 타원형구덩이를 중심으로 4개의 기둥이 방형의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벽도랑〔壁溝〕 시설은 유일하게 8호에서만 확인되었는데, 북쪽 벽면을 따라 부분적으로 굴착한 형태이다. 5호는 잔존길이 282㎝로 후대의 도랑움무덤〔周溝土壙墓〕에 의해 파괴되어 정확한 양상은 알 수 없으나 타원형구덩이 내부에 기둥구멍이 배치된다. 8호는 평면 방형으로 크기는 747×732×11∼15㎝(복원)이며 중앙의 타원형구덩이 내부 및 양단에는 기둥구멍이 없다. 1호는 평면 원형으로 크기는 복원지름 424∼428㎝이며 타원형구덩이 내부 양단에 기둥구멍이 각 1개씩 배치된다.

유물은 토기류, 석기류, 토제품이 출토되었다. 토기류는 개체보다는 작은 조각들이 주로 수습되었다. 이 가운데 1호에서 출토된 내만구연편은 인접한 영암 장천리 집자리 출토품과 매우 유사하다. 석기류에는 돌도끼〔石斧〕, 삼각형돌칼〔三角形石刀〕, 돌끌〔石鑿〕, 슴베있는간돌화살촉〔有莖式磨製石鏃〕, 구멍있는 돌도끼〔有孔石斧〕 등이 있다. 돌화살촉의 경우 대부분의 집자리에서 출토되는 양상을 보인다. 토제품은 대롱모양〔管狀〕의 그물추〔漁網錘〕, 가락바퀴〔紡錘車〕 등이 있다. 이러한 유물들은 3∼5세기 백제 권역 내 영산강 유역 토착세력의 존재양태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된다.

참고문헌

「지방도 819호선 확·포장공사구간내 문화유적 지도위원회 및 현장설명회 자료」(목포대학교박물관, 2002)
『한국고고학사전』(한옥민, 국립문화재연구소, 2002)
「새로 확인된 영암지방의 고분」(김경칠, 『영암옥야리고분』, 목포대학교박물관,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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