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0년(세종 2)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을묘왜변 때 왜구의 침입으로 소실되고 1603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1739년에 문묘를 중수하고 1874년에 향교를 중수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보통학교 임시교사로 사용하다가 1918년 화재로 전소되었다. 1922년 명륜당을 중건하나 6·25전쟁 때 전소되고 1951년 대성전, 1963년 양사재, 1969년 명륜당, 1971년 외삼문, 1976년 내삼문, 1986년 전사청 등을 중건·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동무(東廡)·서무(西廡)·명륜당·양사재·사마재(司馬齋)·청금당(靑衿堂) 등이 있다. 건축형태는 동서일렬로 좌학우묘(左學右廟)의 배치이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맞배지붕이고,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 팔작지붕이다. 외삼문 밖으로 홍살문과 하마비가 있고, 외삼문 밖 좌우에 비석 11기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한다.
1985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으며,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