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사지 석장승 ( 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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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영은사지 석장승 전경
함양 영은사지 석장승 전경
민간신앙
유적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암 입구에 있는 조선후기 에 건립된 2기의 장승. 석장생. 시도민속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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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암 입구에 있는 조선후기 에 건립된 2기의 장승. 석장생. 시도민속문화재.
내용

2기(基). 1996년 경상남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원래 신라시대의 영은조사(靈隱祖師)가 창건한 영은사(靈隱寺) 경내에 있었던 사찰장승으로, 현재는 백운암 입구의 길가 양쪽에 1기씩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몸체에는 각각 ‘좌호대장(左護大將)’과 ‘우호대장(右護大將)’이란 명문이 새겨져 있다. 좌호대장은 높이 118㎝, 둘레 192㎝이고, 우호대장은 높이 240㎝, 둘레 210㎝이다.

본래 영은사의 비보(裨補)장승 또는 호법(護法)장승으로 건립되었던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건립연대는 좌호대장 우측 하단에 ‘건륭삼십년을유윤이월일(乾隆三十年乙酉閏二月日)’이라는 간지가 새겨져 있어 1765년(영조 41)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좌호대장은 퉁방울형 눈에 치켜 올라간 눈꼬리를 하고 일직선으로 내려온 콧등과 주먹코에 벌어진 입술 사이로 4개의 이빨이 드러나 있다. 이마에는 3개의 주름살이 그어져 있으며, 머리에는 건(巾)을 쓰고 있다.

주먹코 아래로는 살짝 벌어진 입 모양과 작은 턱이 원만하게 표현되었고, 턱 주위로 선각된 수염이 그려져 있다. 얼굴은 직사각형으로 몸통에 비해 얼굴이 큰 가분수의 모양을 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빈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 몸통 부분이 땅 속에 묻혀 있어 ‘좌호(左護)’의 명문만 확인된다.

우호대장 역시 퉁방울형 눈에 뭉뚱그려져 내려온 콧등과 주먹코, 벌어진 입 사이로 드러난 이빨 등 전체적인 모습은 좌호대장과 비슷하다. 그러나 머리에 삼각형의 고깔을 쓴 모습과 타원형의 얼굴 형태는 좌호대장과 차이가 난다. 아래쪽 양 볼과 턱 주위로 수염이 새겨져 있으며, 얼굴 하부를 상부보다 도톰하게 표현하였다.

현재 주민들은 이 석장승을 신앙대상으로 인식한다거나, 석장승에게 특별한 의례를 행하지는 않고 있다. 다만 영은사의 석장승에 대한 영험담으로 약 30년 전 트럭 한 대가 이곳을 지나가다가 앞으로 가지 못하고 자꾸 뒤로 물러서게 되자, 한 주민이 “장승에게 비손을 하면 된다.”고 하여 그렇게 하였더니 차가 움직였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하는 것으로 보아, 장승을 신격시한 흔적은 확인된다.

또한 좌호대장의 머리에 부녀자들이 돌을 던져 얹히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하여, 예전에는 이곳 주민은 물론 인근에서 아이 못 낳은 부녀자들도 찾아와 돌을 던지곤 하였다고 한다.

영은사지석장승은 불교와 전통신앙의 융합양상을 전하는 사찰장승으로서 사찰의 경계표(境界標)·금표(禁標)·불법의 수호신장, 국가와 사찰의 보허진압(補虛鎭壓), 잡귀·잡신의 출입을 막는 수문신, 부녀자들의 기자신(祈子神) 등 다양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한 전승물이었다.

또한 퉁방울형 눈과 주먹코, 벌어진 입에 드러난 이빨, 양볼과 턱 주위의 수염 등의 소박한 모습과 익살스러운 표정을 잘 드러냄으로써 생동감과 조형성을 살린 장승으로 평가된다. 특히, 건립시기가 명기(銘記)된 점은 기록자료가 빈약한 조선 후기 민속문화의 전승양상에 대한 사료로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벅수와 장승(金斗河, 集文堂, 1990)
경남지방 장승·솟대신앙(국립민속박물관,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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