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6년(충목왕 2)에 장서기(掌書記) · 이천년(李天年)이 향중의 노소들과 협의하여 현재의 위치에 대성전과 동무(東廡) · 서무(西廡)를 창건하고 영해향교라 하였다. 그 뒤 1529년(중종 24)에 부사 공서린(孔瑞麟)이 명륜당과 태화루(太和樓)를 건립하여,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였다.
1590년(선조 23)에 대대적으로 보수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71년(현종 12)에 명륜당을 중수하고, 1706년(숙종 32)에 대대적으로 중건하였다. 1800년(순조 즉위년)에 향원(鄕員)과 유생들이 중수하고 1838년(헌종 4)에 다시 중수하였다. 1940년대 초에 영덕 군수 임경선(任景善)이 1군1향교제에 따라 관내 영해향교를 철폐시키고 영덕향교에 통합하였다.
그뒤 6 · 25전쟁으로 영덕향교가 소실되어 영해 주민들을 중심으로 향교 복설을 추진, 1979년에 대성전을 비롯한 건물을 중건하고 영해향교라 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10칸의 대성전, 각 3칸의 동무와 서무, 15칸의 명륜당, 각 5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12칸의 태화루, 2칸의 경각(經閣), 10칸의 전사청(典祀廳)을 비롯하여 기타 부속건물 5동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 2현(宋朝二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 70명을 가르쳤으나, 갑오경장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 가을에 석전(釋奠: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을 봉행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현재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