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성규(聖圭), 호는 채원(茝園). 19세기 말 정선군수 · 자인현감 · 함안군수 · 고성부사 · 공상소감동(工桑所監董) · 지도군수(智島郡守) · 여수군수 등을 두루 거쳤다.
그는 부임한 지방의 수령으로서 요직에 있을 당시 자신의 많은 시문(詩文)은 물론, 관청에서 중요하게 집행되었던 일과 내외에서 일어났던 중대한 일 등을 일기체로 엮어 놓았는데, 이것이 ‘총쇄록(叢鎖錄)’ 등의 귀중한 자료로 남겨져 오늘날 전해지고 있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로는 학문과 저술 활동에만 전념하였으며, 평민 출신 시인들과의 모임인 칠송정시사(七松亭詩社)를 조직하였던 것으로도 널리 알려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채원집(茝園集)』 · 『정선총쇄록(旌善叢鎖錄)』 · 『자인총쇄록(慈仁叢鎖錄)』 · 『함안총쇄록(咸安叢鎖錄)』 · 『고성총쇄록(固城叢鎖錄)』 · 『지도총쇄록(智島叢鎖錄)』 · 『여재촬요(輿載撮要)』 등이 있다.
1894년(고종 31) 저술한 『여재촬요』는 지리에 관한 저서로 유명한데, 서구식 지리서의 영향을 받기는 하였으나, 학교 교육의 필요에서 편찬된 지리교과서의 과도기적 산물로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