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왕영종(王榮鍾). 경기도 연천 출신.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1906년 연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김태묵(金泰默)부대와 같이 5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일본군과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평강·신계(新溪) 등지를 점령한 뒤 북쪽으로 진격하여 혜산진까지 진출하였다. 1907년 8월에는 조인환(曺仁煥)·권준(權俊)·김태묵 등과 같이 약 1,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양주·파주·적성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특히, 금성(金城)·토산(兎山) 등지에서 격전을 벌이고 계속 활동하다가 일본군의 대반격을 받고 패전한 뒤 만주로 망명하였다. 만주에서 청년교육에 힘쓰다가 의병 때 부상한 상처로 인하여 죽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