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현길(見吉), 호는 구암(懼庵) 또는 동계(東溪). 현령 우효친(禹孝親)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우순좌(禹舜佐)이며, 아버지는 우숭선(禹崇善)이다. 민순(閔純)의 문인이다.
1573년(선조 6)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성균관의 유생이 되었다. 성균관에서 유생들을 시험하는 의식에 참석한 삼공(三公)과 육조의 당상관에게 유생들이 뜰에서 절을 해오던 관례를 읍례(揖禮)로 시정하여 유생의 권위를 높였다.
1577년(선조 10) 문소전참봉(文昭殿參奉)이 되었고, 이어 내섬시직장(內贍寺直長)과 목천현감을 거쳐 김포현령을 역임하였다.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날 때에는 용궁현감(龍宮縣監)으로서 끝까지 고을을 지킨 공이 인정되어 안동부사로 승진하였다.
그 뒤 강화도호부사(江華都護府使)로 있을 때에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여 권세가의 횡포를 금단하니, 권세가들의 미움을 받아 1599년(선조 32) 홍주목사(洪州牧使)로 전임되었다. 그러나 선정을 베풀었기 때문에 임금의 아낌을 받았고, 나주·충주 목사를 거쳐 1612년(광해군 4) 성천부사에 이르렀다. 문집으로 『구암집(懼庵集)』이 있다.